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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배신자를 지지하는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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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배신자를 지지하는 국민

입력
2007.03.05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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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 최대의 배신자는 누구일까. 누구나 1초 이내에 이완용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고대와 중세에는 누가 이완용 취급을 당했을까.

<삼국사기> 에는 고구려 패망 과정이 자세히 그려져 있다. 666년 연개소문이 죽은 뒤 막리지가 된 큰아들 남생은 동생 남건에게 국정을 맡기고 지방 순시에 나섰다. 그런데 두 사람은 측근들의 부추김에 부화뇌동해 서로 대립했다. 평양성에 있던 남건은 왕의 재가를 얻어 지방 순시 중인 남생을 소환했다.

남생이 오지 않자 남건은 막리지에 오른 뒤 남생 체포조를 보냈다. 남생은 당 고종에게 투항했다. 잘 알다시피 남생은 이후 마지막 고당전쟁에서 길잡이 노릇을 했다.

또 <삼국사기> 에는 사부구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667년 군사를 일으킨 당은 먼저 신성(新城)을 공략했다. 그런데 신성 사람 사부구 등이 성주를 결박해 성 밖으로 나온 뒤 항복했다. 고구려가 난공불락이라고 자랑하던 신성은 이렇게 허무하게 함락됐다. 이후 고구려의 성들은 하나하나 당의 손에 넘어갔다.

668년 당 주력군이 평양성에 도착했다. 당은 한 달 넘게 성을 포위하고 밤낮으로 공격했다. 여기서 승려 신성(信誠)이 화려하게(?) 무대를 장식한다. <삼국사기> 에 따르면 당시 남건의 군사 관련 업무를 대행하던 신성은 어느 날 당 쪽에 사람을 보내 "성 안에서 돕겠다"는 뜻을 전했다. 5일 후 성문이 열리자 당은 일거에 성을 함락시켰다.

고구려의 세 역적으로 꼽히는 이들은 약 500년 후인 1145년께 발행된 <삼국사기> 에 기록됐을 정도로 악명이 높았다. 최근에는 KBS 1TV 드라마 <대조영> 에까지 등장했다. 이 드라마에는 이들 외에 욕살 부기원과 책사 신홍이 나오는데 두 사람은 실존인물이 아니다. 사부구는 평양성에서 성문을 연 장수로 그려져 있는데 그가 '나라 도적질'을 한 곳은 북쪽 신성이다.

이들의 오명을 이어받은 사람이 국경인이다. 임진왜란 당시 함경도 회령의 아전이었던 그는 왜군이 쳐들어 오자 반란을 일으킨 뒤 피란 중이던 두 왕자를 적장에게 넘긴다.

그러나 이 지역 관리 출신 의병장인 정문부가 격문을 보내자 주민들이 그를 붙잡아 참수했다. 함경도 주민들은 나중에 정문부의 업적을 기려 그 유명한 북관대첩비를 세웠다. 그는 이완용이 등장하는 구한말까지 최대 역적의 자리를 꿋꿋이 지켰다.

한국일보와 미디어리서치가 지난달 20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한나라당 대선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가 탈당해 독자 출마하더라도 지지자의 약 70%가 '계속 지지하겠다'고 답한 것이다.

2004년 경선 불복을 막기 위해 정당 경선 낙선자는 대선에 출마할 수 없도록 선거법을 바꿨다. 그런데 한나라당 일부 대선주자는 대선출마 금지 적용을 피하기 위해 경선 후보등록 전에 탈당하려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들이 탈당해 출마한다면 이것은 배신이다. 경선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는 국민적 여망에 대한 배신이고, 경선 불복을 막으려고 선거법까지 고쳤던 정치권 스스로에 대한 부정이다. 그런데 여론조사를 보면 이들이 이런 무지막지한 배신을 해도 국민들은 그냥 넘어갈 모양이다.

남생부터 이완용까지 배신자는 예외 없이 국민적 증오의 대상이 됐다. 한나라당 탈당 대선주자도 예외여서는 안 된다.

이은호 정치부 차장대우 leeeun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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