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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의 길 위의 이야기] 주차차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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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의 길 위의 이야기] 주차차단기

입력
2007.03.05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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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 전에는 없던 주차차단기라는 것이 새로 설치되었다. 입주민에게만 전자칩이 내장된 카드를 발급, 단지 안에 무단으로 진출입하는 차량들을 막겠다는, 아파트 부녀회(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단체 중 하나)의 강력한 의지가 관철된 결과물이었다.

그 바람에 심심찮게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와 무나 배추, 아, 계란이 왔어요, 계란, 하며 구성진 목소리를 자랑하던 아저씨들의 모습이 싹 사라지게 되었다.

모두 아파트 입구까지 왔다가, 풀 죽은 모습으로 트럭을 돌렸다. 아저씨들이 트럭을 돌리고 나면, 그 뒤를 따라 입주민의 차량이 마치 열려라, 참깨, 하는 식으로 차단기를 열고, 단지 안으로 들어선다. 모두 흡족한 얼굴들이다.

통과를 허락받은 자의 얼굴엔 남모를 자부심 같은 것도 엿보인다. 어쩌면, 어쩌면 말이다, 주차차단기라는 것은, 타인을 통과시키지 못하게 하는 장치가 아니라, 그 사람의 상태를 드러내주기 위한 장치로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대기업 사원들이 점심시간마다 목에 전자칩이 내장된 사원증을 자랑스럽게 내걸고 밥을 먹으러 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 사원증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는 백수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사원증이 명함이 되고, 주차차단기가 아파트 시세를 좌우하는 세상이다.

소설가 이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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