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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정치를 좀 아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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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정치를 좀 아는 사람

입력
2007.03.05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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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최근 인터넷 매체와의 합동 인터뷰에서 묘한 말을 했다. 올해 대선의 시대정신이 무엇이겠느냐는 질문을 받고, 정치를 좀 아는 사람을 차기 대통령에 알맞은 사람이라고 답변한 것이다.

대선 때마다 경제가 단골 메뉴처럼 등장하고 있지만 그것은 진정한 시대정신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가치 지향과 정책적 대안이 분명한 사람이 차기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를 좀 알면 좋겠다….

노 대통령의 답변에서 '좀'이라는 말은 어떤 사물의 분량이나 정도를 가리키는 부사는 아닐 것이다. '그것보다는 이것'을 강조하기 위해 쓰인 말로 생각된다.

그 말이 꼭 집어 누구를 지칭한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러면 제2의 탄핵이…"하고 웃음으로 넘겼지만, 항상 그렇듯 노 대통령의 발언에는 정치적 의도가 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샀다. 경제전문가로 알려진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나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을 염두에 두고 "그런 사람들은 안 된다"고 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 누구를 지칭한 말인지 몰라도

이 전 시장은 당장 그 다음 날 "21세기에 경제 없는 정치가 어디 있느냐"고 노 대통령의 말을 반박하고 나섰다. 합동인터뷰를 하기 5일 전, 열린우리당의 신임 지도부와 만난 노 대통령이 이명박 전 시장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집권할 경우에 대한 우려를 나타낸 사실까지 추가로 알려졌다. 발언의 정치적 의도에 대한 의심이 당연히 더 커지고 있다.

노 대통령이 말한 정치는 어떤 것일까. 앞뒤의 맥락으로 보아 그 정치라는 게 무슨 술수에 능하거나 정치공학에 밝아야 한다는 뜻은 분명 아닌 것 같다. 여야관계를 원활하게 조정하거나 대국민 여론ㆍ상징 조작과 홍보를 잘 하는 능력만을 말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차라리 政者正也(정자정야)나 正名(정명)을 강조하는 동양 전통의 공자ㆍ맹자식 왕도정치나 덕치에 통하는 개념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현대적으로 말하면 복잡하고 다양한 갈등과 대립을 조정ㆍ통합하는 능력, 그리하여 통일적인 민주질서 유지와 국가 발전을 선도하는 리더십에 대한 기대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노 대통령의 정치는 대체로 실패한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표적 실패의 내용은 통합보다 분열을 조장하고 예측불허의 품위 없는 언동으로 스스로 신뢰를 깬 것이다.

특히 끊임없는 편 가르기가 가장 큰 문제였다. 대통령이 되라고 정치인 노무현을 찍어 주었더니 대통령 노무현이 아니라 정치인 노무현으로 더 깊이 들어가 버렸다고 말한 사람도 있다. 이런 평가를 받는 대통령의 정치론은 그래서 더 묘하고 시사적인 느낌을 준다.

● 결국 자신에게 되돌아가는 말

노 대통령은 당적 정리를 하면서 당원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단임 대통령의 한계를 지적하고 야당과 언론의 공격을 탓했다. 그러면서 열린우리당의 창당정신에 대해 국민통합과 새로운 정치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것은 특정 시대, 특정 정당의 목표가 아니라 정치를 좀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지향하고 내세워야 할 목표다. 그런데 그는 이 두 가지 모두 실패했고, 대통령으로서 정치를 할 수 있는 시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차기 대통령은 더욱 그렇지만, 그 자신도 새로운 정치, 새로운 처지와 상황에서의 정치를 시작해야 할 시점이 오고 있다.

노 대통령은 맨 앞에 소개한 발언에 나오는 대로 가치지향과 정책적 대안이 분명한 사람이다. 그걸 의심하는 국민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최근의 여러 언설로 미루어 퇴임 후에도 정치의 끈을 놓을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렇다면 노 대통령은 새로운 유형의 전직 대통령으로 새로운 정치를 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전직 대통령은 물론, 종전까지의 자기 자신을 뛰어넘는 새로운 정치인이 되기를 충심으로 기대한다. 남들을 향해서 한 말 같지만 사실 '정치를 좀 아는 사람'이라는 말은 그 자신에게 오롯이 되돌아가는 화두이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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