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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지 아니한가'의 정윤철 감독 "캐릭터로 가는 영화, 좋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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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지 아니한가'의 정윤철 감독 "캐릭터로 가는 영화, 좋지 않아요?"

입력
2007.03.05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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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작 <말아톤> 의 예상 밖 흥행 대성공(전국 518만명)이 그에게 여유를 주었을까. 아니면 부담이었을까.

정윤철(36)감독은 ‘자신감’이라고 말한다. “내 영화로 세상과 소통이 가능하구나. 17년 전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학(한양대 연극영화과)에 가면서 믿었던 ‘영화의 힘’을 다시 기억하게 만들었다.”

<좋지 아니한가> 는 어쩌면 그 자신감의 산물인지도 모른다. 감독으로서 정윤철이 가슴에 품고 있는 욕망의 실현. 그는 그것을 “캐릭터로 끌고 가는 영화, 에피소드의 영화” 라고 했다. <길버트 그레이프> <개 같은 내 인생> <록키> 같은, <말아톤> 도 초원이와 엄마의 캐릭터 드라마였다는 것이다.

그 길로 나아가려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지금은 이야기 위주의 영화가 대세지만 앞으로는 캐릭터 영화가 자리를 잡을 것이다. 나 같기도 하도 이웃 같기도 한 인물들이 주는 독특한 재미. TV의 개그 프로그램 마빡이처럼 소재나 이야기보다 캐릭터가 펼치는 강렬한 인상이 본능적 호소력을 지닌다.”

그는 반 고호의 <해바라기> 를 예로 들었다. 한 장의 그림에도 스토리가 있어야 하는 전 시대 같았으면 물감 낭비라고 생각했을 단순한 해바라기에서 뿜어 나오는 생명의 에너지가 주는 강한 인상. <좋지 아니한가> 도 비록 작고 가볍지만 그런 해바라기가 되길 바라며 만들었다. 그렇다고 흥행 걱정까지 털어버린 건 아니지만 만화적 상상력, 작지만 독특한 개성에 끌려 아주 가뿐한 마음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아뿔싸.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배우들(천호진 김혜수 박해일 황보라)의 기꺼운 참여와 열의로 캐릭터는 빛을 발했지만 그것을 어우러지게 하는 일이 100 조각짜리 퍼즐을 맞추는 것만큼 힘들었다. 거기에 판타지라는 향신료까지 집어 넣으려니.”

그런 캐릭터들을 통해 그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인간관계에 관한 것이다. 달의 뒷면처럼 우리 모두에게는 잊고 있는 중요한 반쪽이 있다. 그것을 좀 멀찍이 떨어져 한번쯤 보자는 것이었다. 그것도 덤덤하게. 가족조차도. 그러면 자기 틀 속에서 힘들게 이해하려다 상처 받지 않고 서로를 ‘인정’할 수 있다. ”

그러고 보니 <좋지 아니한가> 에는 두 세 가지 색다른 장치가 있다. 카메라는 늘 인물들의 뒷모습을 무심히 비추는 것으로 시작하고, 지구에서 멀찍이 떨어져 도는 달이 자주 등장한다.

휴대폰이나 컴퓨터에 의한 위기 역시 부모는 자식에게 ‘올인’ 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기대는 아날로그적 가족관계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디지털환경의 상징이다. “<말아톤> 과도 일맥상통한다. ‘내가 이해 못하는 세계가 초원이에게 있구나’ 라는 사실을 인정했을 때 엄마도, 우리도 자연스럽게, 감동적으로 초원이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영화가 그냥 지켜보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도 “첫눈에 반하는 그래서 더 절망하고 요구하는 인간관계보다는 오랫동안 상대를 관찰하다 친해지는 방식을 선택하고 싶어서 였다. 맵고 짠 것이 아닌 심심하지만 영양가 있는 음식이 더 좋지 아니한가. ”

배우는 남의 옷을 입고 한 편의 영화 속을 걸어갈 수 있을지 몰라도, 감독은 그러질 못한다. 정윤철 역시 이렇게 자기 옷을 입고 갈 수 밖에 없다. 그게 관객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건.

▲ 영화 <좋지 아니한가>

여고 영어교사인 심창수(천호진)는 남성의 힘을 잃어버렸고, 아내 희경(문희경)은 그런 남편이 불만인 억척 아줌마. 처제 미경(김혜수)은 말이 무협작가이지 백수이고, 고교생인 아들 용태(유아인)과 딸 용선(황보라)은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다. 이들에게 ‘가족’이란 단지 한 집에서 먹고 자는 사람들.

영화는 이들의 별난 일상과 충돌을 무심하게, 때론 판타지를 살짝 곁들이며 보여주다, 후반 심창수의 ‘선행이 악행으로 둔갑해 버린 사건’에 모두를 불러 모은다. 그렇다고 “아이고, 우리 가족”하지는 않는다. 사실 이런 새로운 가족과 인간관계의 모색은 한국영화에서도 더러 있었다. 다만 <좋지 아니한가> 는 결론은 물론 그것을 다루는 방식까지 상투적이지 않다는 것이 매력이다.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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