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머나먼 이역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의 자살폭탄 테러에 스러져간 윤장호(27) 병장은 조국을 가슴깊이 사랑한 자랑스런 젊은이였다. 윤 병장은 미국에서 중ㆍ고교와 대학까지 마쳤지만 조국에서의 군 복무와 해외 파병을 자원했다.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1994년 홀로 유학길에 올랐다. 뉴욕에서 중ㆍ고교를 마치고 주립 인디애나대 국제경영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봉사활동을 빼놓지 않은 모범생이었다.
미국에서의 취업 등 쉽고 편한 다른 길이 적지 않았지만 그는 한시도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그는 2004년 켄터키주 남침례신학대학원을 그만 두고 같은 해 12월 군 입대를 위해 귀국했다. 국내 투자회사에서 잠시 근무하던 그는 2005년 6월 자부심을 안고 군문에 들어섰다. 그리고 이 땅에서 자란 젊은이들도 힘들고 어렵다며 꺼리는 특전사령부의 최정예병을 자원했다.
서울 송파구의 한 특전사 부대에서 통역병으로 근무한 윤 병장은 제대를 9개월 앞둔 지난해 9월 아프간 다산부대 파병에도 동참했다. 아프간은 탈레반 등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조직들이 미국에 거세게 저항, 위험 지역으로 꼽혀 누구도 선뜻 지원하지 않는 곳이다. 윤 병장은 제대를 얼마 남겨두지 않아 굳이 지원하지 않아도 됐지만 이번에도 조국을 위해 자신을 내던졌다.
윤 병장의 군 동료들은 그를 “활달한 성격에 선후배에게 늘 맑은 웃음으로 대한 올곧은 성격이었다”고 기억했다. 아버지 윤희석(64)씨는 “가족 모두 말렸지만 계속 아프간 파병을 고집했다”며 울먹였다. 윤 병장은 당시 “아버지 어머니, 저는 영어를 할 줄 아니 조국의 해외 파병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전 우리나라를 누구보다 잘 지킬 수 있습니다. 파병은 앞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자산이 될 것 같습니다”며 설득했다.
윤 병장은 의지가 굳고 심지도 깊었다. 10년 넘는 유학 생활 중 한국에 들어온 것은 1995년 한 번뿐이었다. 아버지가 “네가 들어오면 유학에 실패한 아이들이 너를 보고 좌절감을 느낄지 모르니 공부를 마치고 들어오라”고 조언했다지만 외롭고 힘겨운 미국 생활에서 한 차례밖에 귀국하지 않은 것은 그의 성품을 잘 보여준다. 윤 병장은 2남1녀의 막내이며 가족 모두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교회 권사이며 형 장혁(34)씨는 감리교신학대를 나와 호주에서 목회 활동 중이다.
윤 병장의 미니홈피는 이날 밤에만 2만명 이상의 네티즌이 찾아 접속이 제대로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는 미니홈피에 “갔다오면 제대” “라덴(탈레반 지도자 빈 라덴)이형 잡으러 간다”는 글을 올려 놓았다.
네티즌들은 “국가를 위해 희생하신 윤 병장님. 삼가 명복을 빕니다” “5일전 전역한 예비역입니다. 좋은 곳에 가셔서 편히 쉬십시오”등 추모의 글을 잇달아 남겼다.
김정우 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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