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 출신의 망나니와 결혼을 앞두고 거대한 유람선 타이타닉에 오른 로즈. 도박으로 타이타닉 3등석 표를 겨우 얻은 잭.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이 만난 곳은 결혼을 비관한 로즈가 자살을 감행하려 했던 현장이다.
영혼이 자유로운 잭에게 빠져드는 로즈. 잭은 결혼예물로 받은 어마어마한 크기의 보석 목걸이를 건 로즈의 누드를 그린다. 여기까지는 평범한 사랑 이야기.
극적인 사건은 그 다음이다. 사랑하는 두 사람을 갈라놓은 것은 타이타닉호의 침몰이다. 당시의 최첨단 기술로 만든 역사상 가장 크고 호화로운 유람선 타이타닉이 부유하던 빙산과 부딪혀 두 동강이 나고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다. 아비규환 속에서 사랑을 확인하는 두 사람.
마지막까지 배 끝에 매달려 있다 바다로 떨어진 잭과 로즈. 서로 의지하며 마지막 생명줄을 잡으려 하지만 잭은 숨을 거두고 꼭 살아야 한다는 잭의 마지막 당부를 가슴에 새긴 로즈는 가까스로 생명을 구한다.
지금까지 지구에서 만들어진 영화들 중에서 2등인 <반지의 제왕> 을 멀찌감치 제치고 최고의 흥행을 기록한 <타이타닉> (제임스 카메론 감독, 1997)은 사랑 이야기이다. 타이타닉> 반지의>
죽음이 갈라놓은 애절한 사랑 이야기에 사람들이 기꺼이 지갑을 열어 표를 샀다. 연인들의 애간장을 녹이는 사랑 이야기에는 대개 장애물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타이타닉호 참사 부른 엘니뇨의 원인은
열대 태평양의 대기-해양 시스템의 붕괴
집안 사이의 갈등부터 백혈병까지 기구한 사연을 만드는 조연들의 목록은 길다. 그런데, 빙산이 둘 사이를 떼어 놓았다니 좀 억지스럽지 아니한가? 크고 호화스러운 유람선 앞에 등장한 빙산은 불쑥 등장한 문어머리 외계 괴물처럼 조금 생뚱맞다.
과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1912년 봄, 타이타닉이 항해에 나섰던 아일랜드에서 뉴펀들랜드에 이르는 북대서양 항로를 빙산이 가로막고 있었던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여느 때였으면 타이타닉의 항로에 빙산이 없었을 것이다. 1911년에도, 1910년에도, 그리고 1909년에도 이 항로를 빙산이 가로막은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유독 1912년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지구가 ‘딸꾹질’만 해도 인간의 고통은 심각
엘니뇨도 자연의 순환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1912년에는 지구 전체가 이상 기후로 몸살을 앓았다.
지구 곳곳에서 사람들이 기상이변으로 죽도록 고생을 했다. 중국에는 사상 최악의 홍수가, 인도, 호주, 그리고 러시아에는 가뭄과 기근이, 그리고 아마존에는 가뭄과 대형 화재가 잇달아 발생했다. 남극의 평균기온은 예년보다 10도 이상 낮았다. 하필이면 그 해에 남극 탐험에 나섰던 스코트는 갑자기 찾아온 혹독한 날씨 때문에 조난을 당했고 끝내 숨졌다.
북극의 사정은 달랐다. 한 세기 만에 찾아온 따듯한 겨울이라 빙산에서 유난히 많은 빙괴가 떨어져 나와 작은 빙산이 되었다. 조금 아래, 북대서양은 그 해 30년 이래 가장 혹독한 추위를 겪고 있었다.
북극에서 흘러 온 작은 빙산들이 북대서양의 추위 때문에 녹지 않고 남쪽으로 계속 흘러갔다. 예년같으면 북위 48도선을 넘어 남하하는 빙산은 한 해에 500개가 넘지 않고 그보다 훨씬 더 아래 있는 뉴펀들랜드의 그랜드뱅크를 넘어 흘러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1912년에는 이 선을 넘어간 빙산의 수가 1,000개를 넘었다.
그 빙산들 사이를 전속력으로 질주하던 타이타닉에게 어쩌면 충돌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빙산을 본 다른 배에서 타이타닉호로 경고 전문을 날렸지만 타이타닉호의 무선기사는 승객들의 유료전보를 송신하느라 경고에 눈을 돌리지 못했다. 여러 우연들이 겹쳐 사상 최악의 해난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1912년이 날씨 때문에 이렇게 몸살을 앓은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날의 과학자들은 엘니뇨와 그 해의 기상이변이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1912년에도 엘니뇨가 있었다.
역사적인 기록을 들추어 엘니뇨가 있던 해의 세계 역사를 연구한 학자들에 따르면 엘니뇨가 있던 해에는 어김없이 세계 곳곳에 기상 이변과 그에 따른 커다란 사회적 변동이 있었다. 대개의 사람들과 다른 생명체들은 평균적인 기후에 맞추어 생활을 하기 마련이다. 무엇을 준비할 때도 평균적인 기후를 예상하고 계획을 짠다. 그런데, 기후가 이런 예측에서 벗어나면 모든 것이 흐트러진다. 때로는 큰 재앙이 닥친다.
스페인 말로 남자 아기, 혹은 아기 예수를 의미하는 엘니뇨는 남미의 태평양 연안 어부들이 크리스마스 무렵에 바닷물의 온도가 올라가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었다.
지구적인 바닷물의 순환 시스템을 보면 남미 연안에서는 찬물이 솟아오른다. 그런데 태평양의 무역풍이 잦아들고 더운 물이 태평양 쪽으로 가는 속도가 더뎌지면 찬물이 솟아오르는 속도가 늦어져 평균보다 바닷물의 온도가 높게 나타나는데 이것을 엘니뇨라고 부른다.
엘니뇨는 국지적 현상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열대 태평양의 대기-해양 시스템의 붕괴라고 볼 수 있다. 통상적인 시스템이 붕괴되면서 전 지구적으로 이상 기후를 야기한다.
2~7년 주기로 나타나는 엘니뇨가 기상 시스템에 미치는 강도와 방법은 매번 다르다. 하지만 대개는 동쪽의 따뜻한 바닷물을 따라 비가 내려서 페루에는 홍수가 발생하고 인도네시아와 호주에는 가뭄이 발생한다. 따듯한 대기와 바닷물이 동쪽으로 치우쳐 멀리 떨어진 열대 태평양에 반대의 기상현상을 일으키는 것이다.
태평양 동쪽 연안의 바닷물 온도가 올라간 것이 대서양 저쪽에서 타이타닉이 빙산과 충돌하는 데 방조한 셈이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잠잠해진 무역풍이 잭과 로즈를 갈라놓았다.
따듯한 겨울은 형용모순이다. 그런데 올해 겨울은 유래 없이 따듯했다. 작년 말에 발생한 엘니뇨 탓이리라. 올해는 여느 해보다 훨씬 더운 여름도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지구가 딸꾹질을 하면 그 위에 사는 사람들은 오한에 떨거나 열병을 앓을 수밖에 없다. 어찌되었든, 우리는 겨울을 나기 위해 두터운 외투를, 여름을 위해서는 반바지를 준비하듯이 따듯한 겨울과 서늘한 여름에 대한 대비도 해야 한다.
엘니뇨도 계절의 순환처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우리는 1년 단위로 사는 데 익숙하지만, 엘니뇨의 주기가 2~7년임을 감안하면 한 해보다 더 긴 주기를 눈여겨 봐야 할 때가 된 것이다.
▲ 기후변동, 정상인가? 이상인가?
책임이 있건 없건, 되돌릴 수 있건 없건!
최근의 기후변동을 두고 논란이 많다. 이것이 정상적인 지구 기후의 장기적인 추세 위에 놓여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정상적인 궤도에서 이탈한 것이 분명한지를 놓고 설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까지의 증거들만 가지고는 지금 우리 앞의 기후변동이 이상기후라고 보기에는 부족하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인간의 활동이 기후 시스템에 큰 변동을 가져왔기 때문에 기후 시스템에 영향을 미치는 활동은 시급히 자제해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다.
어느 쪽이 맞을까? 어차피 모두가 승복할 수 있는 증명을 해내기란 어렵다. 두 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정보를 쥐고 있을 미국 대통령이 온실가스가 지구 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이 증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면서 기후변화협약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에 관한 의정서(교토 의정서)에서 탈퇴했다.
물론, 과학적 불확실성보다는 미국 안에서 일자리 감소와 다른 경제적인 효과들을 고려한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다른 나라들은 꾸준히 교토 의정서를 이행하고 있다.
곰곰이 들여다보면, 맞서고 있는 두 입장의 사이에는 인간과 지구의 관계를 바라보는 철학적 차이가 크다. 우리가 지금 무언가 지구의 기후변동에 대해서 행동해야 한다는 사람들은 산업혁명 이후 인간의 활동이 지구와 대기 시스템에 큰 영향을 미쳤고 그 영향을 인간 활동을 규제함으로써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반대의 입장에 선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인간이 지구에 미친 영향은 그리 크지 않으며 설령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해도 인간의 노력으로 그것을 되돌리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주일우 과학평론가ㆍ문지문화원 <사이> 기획실장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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