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금융지주 회장, 우리은행장, 기업은행장, 한국주택금융공사 사장 등 금융기관 최고경영자(CEO) 인선과 관련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공개모집 절차에도 불구, 우리금융지주 회장 등에 재정경제부 고위직 출신 인사들이 사실상 내정된데 이어 우리은행장 기업은행장도 정치권이나 전ㆍ현직 정부 고위층 인사와 친분 있는 인사가 유력하다는 설까지 돌고 있다. 이에 따라 관련 은행 노조들이 크게 반발하는 것은 물론 금융기관 CEO 공모 제도의 근본적인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낙하산 인사설에 반발하는 노조들
우리은행 노조는 23일 우리금융 회장으로 유력한 박병원 전 재경부 1차관에 이어 박해춘 LG카드 사장이 차기 우리은행장에 사실상 내정됐다는 소문이 돌자 노조위원장과 수석부위원장이 삭발을 하는 등 ‘낙하산 인사 저지 투쟁’에 돌입했다. 노조 측은 “뛰어난 실적을 거둔 황영기 현 회장이 재경부 차관 출신 인사에 밀려 탈락한 것으로 알려진 상황에서 행장마저 외부 인사가 된다는 설이 유력하다”며 “또다시 외부에서 은행 근무 경험이 전무한 구조조정 전도사가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다면 총파업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LG카드 사장 유임이 확정된 박 사장이 우리은행장 공모에 지원한 것으로 알려지자 금융권에서는 경제부처와 금융기관 실세들의 인맥인 ‘이헌재 사단’지원설 등과 함께 박 사장의 우리은행장 내정설이 급속히 퍼지고 있다. 이에 대해 박 사장은 “특별한 연관도 없고 실체도 불확실한 이헌재 사단과 연결시키고 사전 내정설까지 도는 것은 음해”라고 주장했다.
행장후보추천위원회(행추위)는 27일 예비후보를 대상으로 면접을 한 뒤 재경부에 추천할 예정인데, 이종휘 현 수석부행장, 최병길 금호생명 대표, 박 사장의 3파전이 예상된다.
기업은행 노조는 지난주 이틀에 한번 꼴로 성명을 내며 최근 진행중인 행장 공모 과정에 날을 세웠다. 노조의 요구는 “행장 후보를 고르는 행추위가 몇 명으로 어떻게 구성되는지, 후보 선발 절차와 기준이 무엇인지 알려달라”는 것. 누가 누구를 어떻게 검증했는지 전혀 모른 채 어느날 대통령이 임명하면 그만인 인사가 어떻게 ‘공개 모집’이냐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노조는 “이런 식으로 행장을 인선하려면 혼란과 의혹만 증폭시키는 공모, 추천 절차를 생략하고 차라리 당당하게 낙하산 인사를 단행하라”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기업은행장은 재경부 출신인 강권석 현 행장과 외환은행 부행장 출신인 장병구 수협은행장의 2파전으로 압축된 상황이다.
베일에 싸인 금융기관 CEO ‘공개’모집
금융기관 CEO 공모 과정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는 것은 공모가 ‘공개 없는 공개모집’이기 때문이다. 공모가 진행 중인 4개 금융기관은 후보추천위원회를 운영하고 있지만 누가 어떤 절차를 통해 후보를 추천하는지 공개한 곳은 한군데도 없다. 기업은행 노조는 “은행 내부에 행추위 근거 규정이 없어 행추위 사무국에 수차례 질의했으나 ‘모른다’ ‘근거가 있는지도 알려줄 수 없다’는 대답만 들었다”고 주장했다.
우리금융지주와 우리은행의 경우 ‘추천위는 사외이사 3명, 외부 전문가 3명, 대주주 대표 1명 등 7명으로 구성한다’는 운영 규정을 두고 있지만 나머지 선발 절차나 기준은 모두 위원회에 일임하고 있다. 행추위 관계자는 “규정에는 이사회에 후보를 추천하는 행추위의 목적만 언급돼 있다”며 “구체적인 후보 추천 방법은 위원회가 알아서 하는데, 공모도 행추위가 택한 방법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회의 의사록은 작성하지만 원칙적으로 대외비”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우리은행 노조는 “면접 결과를 일일이 공개할 의무는 없겠지만 적어도 선발의 가이드라인은 공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응모도 안했는데 낙점?
공모 과정의 비공개 방침 때문에 어이없는 일도 생긴다. 전북은행은 지난주 홍성주 현 행장의 3연임을 확정지었다. 하지만 노조는 “스스로 그만 하겠다고 수 차례 공언한 홍 행장은 막판까지 8명으로 알려진 응모자 명단에 없었는데도 결국 선임됐다”며 행장 선임 무효소송을 내기로 했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김상조 소장은 “공개모집의 큰 목적은 투명성 확보이고, 이는 절차를 공개해야 가능하다”며 “씨티그룹 회장인 로버트 루빈 전 미국 재무부장관처럼 외국에서도 사기업이 퇴임 관료들을 영입하지만 낙하산 시비가 없는 것은 투명하고 명확한 인선 절차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공성이 높은 금융기관 CEO 인선 과정에서 공정성 시비를 막으려면 누가 어떤 절차를 거쳐 어떻게 뽑았는지 공개토록 법적, 제도적 정비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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