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천성명(36)이 상처를 주제로 기이한 모노드라마를 연출했다. 작품 제목은 <그림자를 삼키다> , 무대는 서울 사간동의 화랑 선 컨템포러리, 등장하는 배우는 작가의 분신인 12점의 조각이다. 지하 1층과 지상 3개 층에 작품을 설치해 연극 같은 장면을 선보이고 있다. 그림자를>
연극은 화랑 입구에서부터 시작된다. 현관문 위 선반에 작은 소녀가 손에 풍경을 든 채 걸터앉아 있다. 절집 처마에 매달려 댕그렁댕그렁 우는 그 풍경 말이다.
길에서 훤히 들여다보이는 큼지막한 유리창 안쪽, 1층 전시장 한복판에서는 인질극이 벌어지고 있다. 몸은 아이인데 얼굴은 어른 같은 소년이 다른 한 소년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위협 중이다. 자세히 보면, 둘은 한 몸에서 돋아난 샴쌍둥이다. 이 기괴한 2인조 위로 천정에서 늘어진 거대한 두 다리가 보인다. 저게 뭐지? 지나가던 사람들이 궁금해져서 들어온다.
1층 천정 속으로 사라진 거인의 무릎 위 몸통은 2층에 있다. 거인은 키가 천정에 닿게 크지만 속은 텅 빈 껍데기다. 허연 암벽처럼 중앙을 차지한 거인 주위로 작은 조각 3점이 있다. 물고기 대가리의 소년이 고개를 숙인 채 거인을 향해 털썩 주저앉아 있다. 현관에서 보았던 소녀는 벽에 바짝 붙어선 채 거인을 노려보고 있다.
모서리 창가에는 머리에서 무릎까지 새의 몸통을 훌렁 뒤집어쓴 소년이 등을 돌린 채 서 있다. 꼼꼼한 관객이라면, 천정에서 내려온 아주 가느다란 실이 거인의 목을 조이고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그처럼 약한 실 한 가닥이 거인의 목을 조르다니, 이상도 하군.
배우들은 피부도 옷도 회색이어서 우울해 보인다. 몸은 아이인데 얼굴은 어른이라 애늙은이 같은데다 멍한 표정을 띠고 있다. 입을 헤 벌린 게 바보스럽기도 하지만, 작가가 공들여 칠하고 그려넣은 눈동자에 깃든 알 수 없는 슬픔은 뭉클하면서도 섬?하다. 그 얼굴들은 모두 작가 자신의 것이다.
모종의 심상찮은 드라마가 벌어지고 있음은 누구나 금방 알아챌 수 있다. 3층에 이번 전시의 개념을 밝힌 디지털 사진 작품과 드로잉이 있다. 친절한 설명은 아니므로, 관객들은 각자의 경험과 상상력으로 빈 곳을 채워야 한다.
결말을 보려면 다시 지하로 내려가야 한다.
배우들이 상처 입은 모습으로 다시 등장한다. 아, 소녀는 빠졌다. 소년들은 벌거벗은 상체 여기저기 피를 흘리거나 허리 아래가 실에 칭칭 감겨 있다. 새 껍데기 소년은? 소년은 사라지고 새 껍데기만 남아 있다, 여전히 벽을 향해 등을 돌린 채. 컴컴한 전시장 한 구석, 스탠드 조명 아래 마치 가족사진 찍듯 모여있는 작은 인간들의 군상이 처연하고도 그로테스크하다.
이게 다 뭘까. 작가는 ‘상처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는 늘 상처를 주고 받지요. 상처는 한 번 생기고 나면 온전히 내 것이 될 수 밖에 없고. 상처가 아물게 하려면 감추지 말고 밝은 곳으로 끄집어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치밀한 계산 아래 연출한 연극 같은 이번 전시는 많은 상징을 퍼즐처럼 짜맞추고 있다. 잘 때도 눈을 뜨고 있는 물고기나 수도승들에게 언제나 깨어 있으라고 경고하는 풍경은 자아의 각성을 뜻한다.
등 돌린 새가 상처를 외면하는 방관자라면, 풍경을 든 소녀는 상처를 딛고 갈 길을 가리키는 안내자라고 한다. 거인은? 그건 거대한 풍선처럼 부풀어오른 욕망을 가리킨다. 거인의 목을 조르는 가느다란 실은? 풍선을 터뜨리는 데는 바늘 구멍으로도 족하니, 거인이 꼭 굵은 밧줄에 목을 맬 필요는 없겠다.
이 전시, 아니 이 연극은 3부작의 1부다. 상처입고 방황하던 주인공 소년이 어디로 갈지, 상처가 아물 수 있을지는 2부, 3부에서 지켜보기로 하자. 3월 10일까지. (02)720-5789
오미환 기자 mhoh@hk.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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