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을 앞둔 할머니가 남편의 외도와 폭행 등에 견디다 못해 60년 가까운 결혼생활을 접고 황혼이혼했다.
1948년 11월 최모(79ㆍ여)씨는 한 살 연하의 고등학생이던 남편 김모씨와 결혼했다. 최씨는 50년 한국전을 전후해 사회주의 정치활동에 뛰어든 남편을 대신해 시부모를 모시고 7남매를 돌보며 가정을 돌봤다. 남편 때문에 정부기관에 불려가 갖은 고초를 겪기도 했다. 남편은 그러나 이런 최씨에게 “무식해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며 면박을 일삼았을 뿐 따뜻한 말 한마디 없었다.
그러다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된 64년 김씨는 몰래 다른 여자와 동거하면서 두 명의 아이를 낳았다. 최씨가 이 사실을 알자 남편은 용서를 구하기는커녕 현실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했다. 간혹 남편에게 따질 때면 폭행만 돌아왔다.
김씨는 이후 사업이 번창해 부와 명예를 얻었지만 최씨는 매월 적은 생활비를 받아써야만 했다. 김씨는 동거녀에게는 3층 건물을 지어주고 매월 50만원씩을 주면서도 정작 대가족과 함께 사는 최씨에게는 30만~40만원만을 줄 뿐이었다. 남편은 70세 이후에도 다른 여자와 가깝게 지냈다. 2004년 최씨가 참다 못해 생활비가 적다고 따지자 김씨는 폭언을 퍼 붓고 집을 나가 또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리고 생활비 등을 끊었다. 몸이 허약해 병원을 다니는 최씨는 치료비마저 끊기자 ‘남은 생이라도 무시당하지 않겠다”는 생각에 이혼을 결심했다.
서울가정법원 가사4부(부장 손왕석)는 25일 최씨가 김씨를 상대로 낸 이혼 및 재산분할 등 청구 소송에서 “위자료 및 분할재산 총 9억원을 지급하라”며 최씨의 청구를 받아들였다. 법원은 “김씨가 다른 여자와 장기간 동거하면서 부정행위를 하고 아내를 무시하며 폭언, 폭행해 정신ㆍ육체적 고통을 줘 혼인관계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에 이른 것은 이혼사유가 된다”고 판시했다.
박상진 기자 oko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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