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전 한나라당 대선주자들과 지도부의 조찬 간담회장. 대화가 막바지에 이르자 강재섭 대표가 조용히 합의문을 내밀었다. 경선 룰에 대한 합의 도출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원론적 내용이 간단히 적혀 있었다. 박근혜 전 대표는 힐끗 본 뒤 “돈 쓰는 경선을 하지 말자” 며 이를 합의문에 넣을 것을 요구했다.
또 고진화 의원은 “줄 세우기를 하지말자”며 ‘무계파 선언’을 넣자고 했다. 이명박 전 시장은 묵묵부답. 이 때 손학규 전 지사가 “사전 조율도 없이 합의문을 불쑥 내밀면 어떻게 하느냐. 나는 못한다”고 언성을 높였다. 지도부가 준비했던 소위 ‘여의도 선언’은 이렇게 백지화했다.
한나라당 대선주자들이 모처럼 얼굴을 맞댔으나 빈손으로 헤어짐으로써 앞으로 경선 방식과 세 확장 경쟁을 둘러싼 갈등이 더욱 심화할 전망이다.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는 이 전시장에 대한 박 전 대표와 손 전 지사와의 대립 각도 더욱 예리해졌다. 박 전 대표는 경선시기 보다는 ‘깨끗한 경선’에 방점을 찍었다. 합의문에도 넣자고 했고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금품시비나 부정거래 시비에 휘말리면 후보를 사퇴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는 박 전 대표측이 “이 전 의원측이 의원들을 줄 세우고 빼내간다”고 공격하는 것과 맥이 닿아있다. 세력 경쟁 과정에서 위법 시비가 붙으면 이를 강력한 공세소재로 삼겠다는 뜻이다. 특히 ‘후보 사퇴’까지 거론한 것은 심상치 않다. 아울러 이 전 시장에 대한 제2검증의 예고편이라는 시각도 있다.
손 전 지사는 이미 지난해말 대선주자 모임에서 이 전 시장측이 의원들 줄 세우기를 하고 있다고 공개 비판한 바 있다. 이날 “특정 후보를 위한 들러리 경선”이라는 언급도 이 전 시장을 겨냥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손 전지사 캠프에선 “당지도부가 특정 주자의 대세몰이에 나서고 있다”는 반발도 나온다.
경선 방식은 상당한 진통을 겪겠지만, 결국엔 어느 정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손 전 지사가 수정 요구가 강력한 데다 박 전 대표 역시 경선 룰을 바꿀 가능성을 완전히 닫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는 이날 “당헌 당규 대로하자”면서도 “절차에 따라 당원의 의견을 묻는다면 (수정할 수도 있다)”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오히려 박 대표측의 강조점은 ‘9월 이후 경선’에 놓여 있다는 게 정설이다. 이정현 공보특보는 “사견이지만 손 지사측의 반발 등이 있는 만큼 당원들의 의견을 묻는 절차가 진행되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 전 시장은 모든 걸 당 기구 결정에 맡기겠다는 입장이어서 변수가 안 된다. 앞선 자의 여유인 셈이다.
이태희 기자 goodnew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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