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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설날과 가족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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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설날과 가족공동체

입력
2007.02.23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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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설날은 주말과 겹친 탓에 대단한 명절 같은 느낌을 주진 못했지만, 그래도 가족과 서로의 안부를 얼굴 맞대고 확인하는 시간을 가질 수는 있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서로 나누고 염려할 수 있다는 게 민족대이동을 주기적으로 체험하는 한민족 가족공동체의 특권일 것이다.

● 부동산 화제에 서먹해지는 만남

옛날 어렵게 살 때, 여러 형제가 있는 집에서는 장남에게 특별한 배려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닭 한 마리로 백숙을 끓이면 장남이 절반을 먹고 다른 형제들은 나머지로 배를 채웠다는 이야기나, 형만 대학을 가고 나머지 형제들은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형의 등록금 마련했다는 이야기는 드물게 듣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 형은 나중에 출세해서 동생들에게 진 빚을 갚는다는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혹 출세한 형이 동생들에게 마음을 쏟지 않는 일이 생겨도 착한 동생들은 그런 형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어려운 내색 하지 않고 지나는 경우도 있었다. 어쨌든 서로 가족이니까, 서로 하나이니까 하는 생각으로 불만을 삭였을 것이다.

비록 희미해지긴 했어도 명절에 가족들이 모이면 그런 느낌은 여전히 남아있는 듯하다. 하지만 설날에 모인 가족 가운데 부동산으로 돈 번 이야기가 나오면 다른 분위기가 연출된다.

내 형제라도, 누가 부동산으로 순식간에 수억을 벌었다면 초연하기가 쉽지 않은 경우가 있다. 열심히 일해 돈을 모아도 치솟는 아파트값에 내 집 마련의 꿈을 접어야 하는가 싶은 동생의 입장이라면 말이다.

재테크니 부동산투자니 하는 일에 정신을 팔지 않고 제 할 일만 열심히 하면 되겠거니 하던 사람들로서는 일 년 전에 산 아파트가 올라 벌게 된 2억원의 수입을 진심으로 축하해주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런 부에 대해서는 공동체주의적으로도 또 개인주의적 관점으로도 인정하기 어렵다. 정당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부는 어떤 사회에서도 존중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은 국가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한다. 그리고 최근 협상이 진행되던 과정에서 분야를 넘나드는 빅딜의 가능성이 거론되기도 했다. 그 소식을 듣다보니 닭 한 마리의 백숙을 나누는 옛날의 형제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게 말이 되고 동생이 그걸 용납할 수 있으려면, 빅딜을 통해 덕을 본 형이 동생으로 하여금 보따리 싸지 않게 하는 가족성이 전제되어야 할 텐데, 신자유주의의 법은 그런 걸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지 않는가.

● 작은 것도 나누던 형제애 어디로

흩어져 있던 가족이 한데 모인 자리에 이런 긴장감이 흐르게 되면 화제는 피상적인 수준으로 전환이 된다. 그저 TV 드라마나 영화를 들여다보고 있든지, 몇 푼의 돈을 걸고 화투짝 든 채 시간을 보내는 게 피차 속이 편하기 때문이다. 피상적인 대화와 의미없이 오가는 말 사이에 가족성이 사라지고 공동체가 소리없이 무너지지만 말이다.

다음 설에는, 열심히 일해 돈을 모았더니 집을 살 수 있었다는 말을 들었으면 좋겠다. 농사를 지어도 잘 사는데 아무 문제 없더라는 말을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함께 모이고 함께 사는 게 즐거울 테니 말이다.

김선욱ㆍ숭실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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