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지로 한류열풍의 진원지인 강원 춘천시 남이섬. ‘욘사마(겨울연가 주인공 배용준씨)’의 매력에 흠뻑 빠졌던 일본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요즘 들어 뜸하다.
2년 전만해도 10만명의 일본인들로 북적였던 곳이지만, 지난해엔 3만4,000명으로 급감했다.
㈜남이섬 안애림 주임은 “한류 바람이 주춤해진데다 엔화가치가 하락하면서 일본인들이 한국방문을 꺼리는 것 같다”며 “지금은 1,2명씩 짝을 이뤄 오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2. 충남 태안군 근흥면 안흥항 인근에서 피조개를 잡는 어민 김모(37)씨는 요즘 ‘갯일’(갯벌로 배를 끌고 나가 조개 등을 잡는 일)’을 접었다.
거의 전량 일본으로 수출되는 피조개의 값이 환율 때문에 형편없어졌기 때문. 김씨는 “㎏당 최소 4,000원은 넘어야 일당이 빠지는데 지금은 겨우 3,000원대 수준”이라며 “수온 상승으로 잘 잡히지도 않아 아예 일손을 놓고 있다”고 말했다.
#3. “10여년만에 찾아온 위기입니다. 적자가 나지만 대책이 없어요.” 파푸리카(피망의 일종)를 일본으로 수출하는 전북 김제의 생산농가 겸 영농조합(농산무역)대표인 조기심씨는 “2~3년 전만해도 ㎏당 2,500엔~2,700엔에 수출했지만 지금은 IMF직전 수준인 1,600엔까지 내려왔다”며 이같이 호소했다.
조씨는 “비닐하우스는 평당 20만~30만원, 글래스(유리)하우스는 50만~60만원의 시설비를 투자했는데 다른 작물로 대체할 수도 없고 막막할 따름”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자동차 반도체 가전 같은 ‘주력산업’만 엔저(低)에 한숨 쉬는 것은 아니다.
채소나 꽃을 재배해 일본으로 내다파는 농민들, 어패류를 수출해온 어민들, 일본인 관광객들로부터 벌어들인 돈으로 먹고 사는 식당ㆍ관광업소들…. 엔저의 그늘은 이제 농촌에서, 어촌에서, 그리고 관광지나 도심거리에까지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엔화의 하락폭은 지난 2년간 25%가까이 된다. 2005년초 100엔당 1,000원을 넘었던 엔ㆍ원 환율은 현재 780원대다. 1,000원을 받았던 물건값이 2년만에 800원에도 못미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타격은 관광 분야다. 서울 시티투어버스 운전기사 강정수씨는 원ㆍ엔환율 변동의 여파를 매일 눈으로 목격한다. “재작년만해도 버스안에는 일본인이 단연 많았지만 요즘은 동남아 관광객들이 더 많아요. 이젠 일본어 듣기가 쉽질 않습니다.”
일본인 단체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서울 명동과 무교동, 신촌일대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신촌의 한 한식음식점 업주는 “환율 때문에 일본인 관광객 자체가 줄었고 그나마 식당에 온 관광객들도 씀씀이가 크게 작아졌다”면서 “예전에 갈비를 주문하던 관광객들이 이젠 불고기나 비빔밥을 시킨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보다 많게는 매출이 60~70%가량 줄었다”며 “주변 식당들도 문닫을 곳이 한 두 곳이 아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대일 수출과 관련된 농ㆍ어업 분야는 이미 한계상황을 넘어 섰다. 김 수출업자들 가운데 일부는 원ㆍ엔환율이 급락하자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수출을 계속하고 있지만, 견디다 못한 일부는 아예 국내시장으로 유턴했다.
부산에서 피조개를 수출하는 ㈜세화의 배기일 사장은 “지난 2년간 엔화 하락으로 피조개 1㎏당 5~7%였던 수출마진이 모두 사라졌다”며 “이 때문에 수출물량이 지난해에만 30%나 줄어들었고 가격도 내려가면서 서해안의 어민들도 작업을 포기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부산 강동동의 1,000평 규모 비닐하우스에서 국화를 재배해 일본으로 수출하는 농민 황기하씨는 “절화(絶花)국화 한송이당 300원은 돼야 수지가 맞는데 200원대로 떨어져 요즘은 농사를 안짓는 게 오히려 낫다”고 허탈해 했다.
문제는 엔저_원고 추세가 좀처럼 반전되기 힘들 것 같다는 점. 자동차나 전자 같은 대기업 주력 업종이야 기술개발이나 원가절감으로 어려움을 극복한다지만, 영세한 농민 어민 식당주인들은 엔저를 이겨낼 방법이 없다.
대일 국화 수출물량의 90%를 차지하는 경북 구미원예수출공사 이경수 팀장은 “대부분 육모부터 재배, 생산, 수출까지 농민 한 사람이 도맡는 현 체제를 개선해 농민은 생산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정부가 분업화 및 대규모 단지화 등 인프라 구축을 적극 도와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진용기자 hub@hk.co.kr안형영기자 promethe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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