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을 쇠고 돌아오는 길, 역시나 고속도로는 꽉 막혀 있었다. 해마다 반복되는 일인지라 화도 나지 않고 조급증도 일지 않았다. 그냥 느긋한 마음으로 지나가고, 지나치는 차 안의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그러면서 느낀 점 하나. 요즈음 차들은 거의 대부분 내비게이션을 달고 있다는 것. 내비게이션은 모르는 길을 일러주는 문명의 이기이다.(그 내비게이션 때문에 사람들은 점점 방향감각을 잃어간다고 한다.)
한데, 그 기기가 단순히 길만 일러주는 것이 아니라, 영화도 보여주고 스포츠 중계도 보여준다고 한다. 해서 그런가, 막히는 고속도로에 갇혀 있는 운전사들은 너나없이 내비게이션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었다. 지루한 시간을 잊게 해주는 것이야 나름 고마운 일일 수도 있겠으나, 또 그만큼 자기 사색의 시간은 사라지고 없다는 뜻도 된다.
예전엔 다들 그랬다. 막히는 고속도로에서 이틀 만에 떠나온 고향을 생각하고, 작년보다 더 늙으신 부모님을 걱정했다. 하지만, 이젠 모두 내비게이션이 보여주는 <트로이> 나 <판의 미로> 걱정만 한다. 판의> 트로이>
사색을 빼앗긴 자는 노예의 시간을 살 수밖에 없다. 모르는 길을 일러주는 척하면서, 영혼의 길까지 인도하고 있는 형국이다. 더 조심해야 한다.
소설가 이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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