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진보진영을 비판한 글 곳곳에서는 진보진영에 대한 서운함이 묻어난다. 가뜩이나 보수세력으로부터 ‘좌경’ ‘좌파’라는 원색적인 공격을 당하고 있는 마당에 진보진영마저 ‘보수’ ‘신자유주의’로 몰아붙이면 어떻게 하느냐는 섭섭함과 억울함을 읽을 수 있다.
노 대통령의 글은 진보학자들 사이에서 벌어진 참여정부 평가 논쟁과 연관이 있다. 최장집 고려대 교수는 최근 “현 정부는 무능력과 비개혁 때문에 실패했으며 대안을 제시하지 못할 경우 한나라당에 정권을 넘기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해 논쟁에 불을 댕겼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는 “현 정부의 실패는 진보ㆍ개혁세력 전체의 실패”라는 논리로 반론을 전개했고 손호철 서강대 교수는 “현 정부가 신자유주의를 옹호한다면 한나라당과 다를 게 없다”고 재반박했다.
진보학자들이 노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게 된 것은 ▦이라크 파병 ▦비정규직 관련 법안 처리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등 참여정부의 정책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한마디로 ‘왼쪽 깜빡이를 켜고 오른쪽으로 돌았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글 머리에 “학자들은 참 좋겠다. 학자들은 말하는 사람이어서 제약이 없다”고 이들에 대한 언짢은 심정을 우회적으로 나타냈다. 노 대통령은 “오래 전 어느 모임에서 진보학자 한 분에게 ‘나는 비주류 중의 비주류라 대통령이 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말을 했던 일이 있다”며 “지금 참여정부를 매도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그 분은 그 때 ‘그럴 것’이라고 상당히 힘주어 말했다”고 다소 감정적인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 분’은 최 교수를 일컫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그런 내가 대통령이 됐는데 도와 주지는 못할망정 어려운 처지에 있는 나와 참여정부를 흔들고 깎아 내리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 말에는 ‘모진 친정’에 대한 원망이 배어 있다.
청와대도 대통령의 발언에 가시가 돋쳐 있음을 인정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19일 기자간담회에서 “참여정부가 몰매 맞을 정도로 잘못한 일이 없다. 양극화와 부동산문제 등은 선진국도 이미 겪었던 것들인데 이를 ‘얼치기 386들’의 실정으로 치부하는 데 따른 야속함이 있었다”고 이번 발언의 배경을 털어 놓았다.
이번 발언이 막바지 국정운영 과제를 적극 추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해석도 있다. 특히 노 대통령이 “대외 개방을 거부하자는 주장은 지난 시대에나 가능했던 일”이라고 밝힌 대목은 한미 FTA 추진을 염두에 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와 함께 열린우리당의 분당 과정에서처럼 시민사회와 진보진영의 개편에까지 청와대가 적극 개입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김지성 기자 j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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