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 년 동안 일어난 사건이라고는 영토 밖 베트남 전쟁 밖에 없는 평화 시대를 사는 미국. 휴가를 얻기 위해 노동에 묶여 있고, 꿈꾸되 그 꿈에 갇혀 버린 보통 사람들의 비극적 일상을 희극적으로 그린 연극 <네바다로 간다> 가 극단 물리 이름으로 공연 중이다(한태숙 연출). 네바다로>
원 제목이 <월리의 카페> 인 이 연극은 사막 한 가운데 햄버거 모양의 지붕을 씌운 카페를 열고 손님 오기를 기다리며 티격태격 세월을 흘려보내는 세 사람의 삶의 형용을 보여 준다. 거의 대사에 의존해 설상가상과 점입가경의 희극적 구조를 쌓아가는, 잘 짜인 이 연극은 제한된 실내 공간에서 펼치는 3인조 코미디라 할 수 있다. 월리의>
월리 역을 맡은 한명구의 이완된 연기력이 물이 올랐고, 새댁에서 노파까지 30년 세월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이연규가 눈에 띈다. 고상한 배역을 많이 맡아온 정재은은 허황되고 푼수 끼 넘치는 자넷을 맡아 연극의 흥을 돋운다.
‘한태숙표 연극’이 누리는 무대 위 기호들의 단아한 배치와 사물들의 공예적인 진열 솜씨는 이번 연극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진지하기만 한 그간의 작업에서 형식적 세공에 치우쳐 사람 살이의 온기를 잊는가 싶더니만 엄동에 살아남은 봄동인 듯 연극은 내내 파릇하고 유쾌하다.
극의 결말 역시 완연한 해피 엔딩이다. 카페의 최초 손님이자 종업원이었던 자넷은 재혼을 거듭해 챙긴 유산 덕에 십년 만에 금의환향한다. 그녀는 월리의 평생 소원인 길가 카페를 사들이고, 세계 일주 여행을 제안함으로써 루이스의 오랜 소망인 사막 탈출의 꿈을 이루어준다.
본래 원작은 모호한 결말을 띠고 있다. 원작대로라면 관객은 극 말미 주어진 갑작스런 ‘해피 엔딩’을 사실로 받아들여야 할지, 아니면 행복한 결말이 등장 인물들의 꿈과 소망이 만들어낸 환상이면서 공모에 불과한 것인지 혼란을 겪게 된다.
관객이 극장을 나서면서 갈팡질팡할 수 있기를 ‘샘 보브릭’과 ‘론 클라크’ 두 작가는 희망한 듯하다. 그러나 이번 공연에서 연출가는 불운 끝 로또 복권 당첨만큼이나 느닷없는 ‘해피 엔딩’ 쪽에 해석적 손을 들어주었다. 모호함이나 중의적 해석을 참지 못하는 요즘 관객에 대한 배려일까? 밸런타인 데이와 구정 연휴를 의식한 선의에서인가? 현실에 대한 극단적인 환멸 때문에 부러 해피 엔딩으로 결말을 비트는 경우가 종종 있긴 하지만 이에 해당하지는 않을 것 같다.
원작에 담긴 열린 결말의 가능성을 닫아 건 것은 종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삶이란 상실과 망실 그 자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딜 수 있는 것은 꿈꾸는 능력과 유머를 즐길 수 있는 인간의 재능 때문임을 되새길 수 있는 메시지가 희석된 느낌이다. 2월 25일까지
아르코 예술극장 소극장. 극작ㆍ평론가 장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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