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투구식 정치싸움도 모자라 얼렁뚱땅 해법이라니… 그러고도 이 곳을 지성의 전당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논문 표절 의혹이 제기됐던 이필상 고려대 총장이 15일 끝내 사의를 표명했지만, 56일을 끌었던 논란의 뒤끝은 영 개운치 않다. 정작 이번 사태를 촉발시킨 ‘표절 의혹’의 진실에 대해선 이 총장과 교수의회 모두 ‘꿀먹은 벙어리’이기 때문이다.
“표절이 절대 아니다”면서 규정에도 없는 전체 신임투표 카드까지 던졌던 이 총장은 “사태가 원만히 수습되기를 바라는 마음”만 전한 채 꽁꽁 숨어버렸다.
이 총장의 신임투표를 거부하며 무조건 퇴진을 요구했던 교수의회도 마찬가지다. “학문윤리를 여론몰이식 정치해법으로 풀 수 없다”는 단호한 결의는 온데 간데 없고 “학교나 총장 본인을 위해 다행한 일”이라며 자축만 하고 있다.
현승종 재단이사장 역시 “(사의를 표명했으니) 표절 의혹을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겠다”면서 ‘총장 지명제’ 회귀라는 새 카드를 꺼내 들었다. ‘표절 의혹’이 초래한 심각한 학내 내분을 단번에 제압해버리겠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표절 논란을 피한다는 명목으로 전직 고위관료나 기업인 등 재단 입맛에 맞는 외부인사를 영입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고대는 이번 사태로 총장이 불명예 퇴진하고 교수간 파벌싸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등 많은 것을 잃었다. 하지만 더욱 안타까운 것은 표절에 대한 기준과 자체 검증시스템을 확립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저버렸다는 점이다.
합리적인 지성의 힘을 포기하고 정치적 해법에만 몰두함으로써 제2의 표절 논란이 언제든지 불거질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셈이다. 과연 고대가 ‘100년 명문사학’이라고 자신하게 말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이현정 사회부 기자 agada2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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