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면 그들에게 의뢰할 것이다’론 처노 지음ㆍ강남규 옮김 / 플래닛 발행ㆍ전 2권 각권 819, 441쪽ㆍ2만~3만2,000원
지난해 이뤄진 국내 최대 인수ㆍ합병(M&A) 건인 대우건설 인수에 실질적 주간투자사로 영향력을 행사한 J.P.모건. IMF 외환위기 당시 서방 채권단의 얼굴 노릇을 해 우리에게도 익숙한 J.P.모건 가문의 흥망성쇠를 다룬 <금융제국 j.p.모건> 이 출간됐다. 금융제국>
프린랜서 저널리스트 론 처너를 데뷔(1990년)와 동시에 깜짝 스타로 만든 책이다. 저자가 2년 동안 모건가(家)의 양대 거점인 뉴욕과 런던을 오가며 수많은 인터뷰를 통해 150년을 관통하는 집안 사람들의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J.P.모건은 존 피어폰트 모건 1세(1837~1913)와 아들 잭 모건(1867~1943)을 통칭하는 명칭이다. 다혈질의 아버지와 소심한 아들의 성격은 대조적이지만 100년 전 이들 부자가 헛기침만 해도 월스트리트가 요동칠 정도로 영향력은 막대했다.
미국에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탄생하기 전인 1913년 이전, 은행들이 집단파산위기에 직면하면 J.P.모건은 은행가들을 맨해튼의 대저택에 불러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등 실질적인 중앙은행 역할을 했다.
책은 3부로 구성된다. 미국의 주정부들이 발행한 채권을 유럽의 투자자들에게 중개하는 작은 회사로 출발해, J.P.모건이 미국산업의 대동맥이 된 철도 회사를 장악하며 자본을 축적하는 과정을 다룬 귀족자본가시대(1838~1913), 미국 정부의 후견 아래 각국 정부를 상대로 비즈니스를 펼치던 국제정치시대(1913~1948), 자본동원능력을 갖춘 다국적기업의 등장으로 경쟁이 치열해지자 거친 금융기법을 선보이며 적극적으로 기업 인수합병전에 뛰어든 카지노시대(1948~1989)로 분류한다.
제국에 늘 빛과 그림자가 따라다니듯 저자는 J.P.모건사(史)의 영욕을 가감 없이 그려낸다.
노동자들이 도박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문화계의 도덕부흥운동을 후원했던 J.P.모건의 윤리경영을 긍정적으로 그려내는 한편, J.P.모건이 2차 대전 직전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 파시스트 국가에 자금과 편의를 지원했던 추잡한 거래도 폭로한다.
금융제국을 이끌었던 모건가의 이면을 그려내는 대목도 흥미롭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아버지에게 경영권을 넘겨받지 못할까 봐 조바심 내는 아들, 아버지의 바람기 때문에 우울증을 앓던 어머니에 대한 아들의 연민 등 제국 경영자들의 인간적인 면모가 핍진하게 묘사돼있다.
J.P.모건은 모건스탠리와 모건그렌펠도를 계열사로 두었는데 둘 다 금융 회사였다. 그러나 2000년 J.P.모건이 체이스 맨해튼 은행에 합병되고, 모건스탠리는 증권사 딘 워터에, 모건 그렌펠도 도이체방크에 흡수되면서 금융 대제국은 해체의 길을 걷는다.
1970년대 ‘하나님이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면 모건스탠리에 의뢰할 것이다’라는 광고를 내보낼 정도로 자신만만했던 금융제국이 어떻게 부흥하고 어떻게 몰락했는가를 이해하고 싶다면 1,200페이지에 이르는 분량이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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