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잡은 충북에서 좋은 소재 발견하시길
재인 형께
일전에는 폐를 너무 많이 끼쳐 드렸습니다. 반드시 그럴 것 같아서 망설이다가, 그래도 얼굴이나 보자고 연락을 드린 것이 그런 결과를 빚게 되었습니다. 서울에 와서 짐을 푸니 정말 귀물이었습니다. 생전 처음 진짜 꿀을 만난 것이 분명했습니다.
보은쪽에는 언제 가게 될는지 아직 미정입니다. 청주, 청원 이야기를 대강 써놓고 가려면 금주 중에는 어려울 것 같은데, 아무튼 보은은 되도록 동행할 수 있도록 사전에 생각을 해두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부탁의 말씀은 <내 고장 전통 가꾸기> 청원군 편(1, 2집 중에서 1집만)을 소생에게 우송해 주시면 참고로 쓰고 수일 후에 돌려 드리겠습니다. 또 혹 이 형이 구할 수 있는 물건이면 소생이 아주 가져버리든지, 했으면 좋겠습니다. 일간 우송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내 고장 전통 가꾸기> 류는 대개 이장, 새마을 지도자 등에게는 모두 배포를 한 듯하니까, 이 형은 학생들을 통해서도 구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내> 내>
그리고 이 형이 충북에서 이왕 터를 다지고 뿌리를 박았으니 뒷날의 참고를 위해서도 본래의 군지(郡誌)나 도지(道誌) 그리고 도공보실에서 발간한 시지(詩誌) 등도 구하세요.
시지를 구하시면 와당(瓦當) 연구에도 자료가 될 것입니다. 내가 아는 한 <내 고장 전통 가꾸기> 말고 그 전에 본격적인 군지를 낸 곳은 충북에서도 많습니다. 단양, 기산, 음성, 진천 등등인데, 이런 것들은 도서관 밖에 비치되어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소생이 생각하건대 민요, 구전 등으로 해서 가위(可謂) 소설, 수필 등의 소재보고 입니다. 내>
<내 고장 전통 가꾸기> 는 갑자기 서둘러서 형식만을 갖춘 것이기에 부실하기 짝이 없고 미화시킨 것뿐이며 논거가 되기에 미흡한 점이 많습니다. 다행히 충북은 인구유동이 드물고 안주(安住)한 곳곳이므로 고전, 고분, 유물 등을 수집하기에는 아직도 가능한 곳이니까 늘 유념해 두시기 바랍니다. 뒷날 일단 충북을 떠나면 그때는 만사가 다 어려워지니까요. 실없는 객담이 많았습니다. 83. 3. 1 文求 내>
■ 김다은의 우체통
나이와 세월 뛰어넘는 아름다운‘호형호제’
얇은 똥색 봉투 위에 길쭉한 83년도의 우표가 붙어 있다. ‘강감찬의 귀주대첩 General kang Kam-chan's Great Victory at Kyiju’이 인쇄되어 있는데, 귀주의 산과 들을 배경으로 개미떼 군사들이 비교적 선명하게 싸우고 있다. 한쪽을 쭉 찢어 읽은 편지를 20년 이상 간직해온 사람은 수신자 이재인 씨다.
“이형기 선생 소개로 60년대 이문구 형을 알게 됐는데…, 그 후 나는 ‘자유실천’ 따라 댕기고 유신 반대하다 해직되었지. 충북에 임용고사 치고 공립학교 교사로 움츠리고 살고 있었다. 그 즈음 문구 형이 서울신문 <신동국여지승람> 연재 차 청주에 와서 연락하였기에 자료들 챙겨주고 돌아갈 때 아카시아 꿀 한 병을 주었더랬다, …그랬더니 고마웠다는 사연이지요.” 신동국여지승람>
편지 속에서 ‘문구’는 ‘재인 형’이라고 호칭하고 있다. 반면에 ‘재인 형’은 대화 중에 ‘문구 형’이라는 표현을 자주 입에 올렸다. 새삼 ‘형’이 나이와 세월을 뛰어넘어 산자와 죽은 자를 연결하는 끈끈하고 다층적인 우정의 단어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형! 문구 형, 명천 이 문구 선생(1942~2003)은 <관촌수필> 의 저자이다. 관촌수필>
(김다은, 소설가/추계예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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