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경제점검회의에서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이 "앞으로 가급적 말을 아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하자, 노무현 대통령은 화를 내며 "공개석상에서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다. 가려서 해 달라"고 맞받아쳐 화제가 되었다.
손호철 교수는 한국일보 칼럼에서 "노 대통령의 문제들이 대부분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가려하지 않은데서 연유한 것임을 생각하면 공개석상에서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가리라는 노 대통령의 발언에 어안이 벙벙해진다"며 "옛말대로 '사돈 남 말 한다'"고 꼬집었다.
● 지도자의 '사돈 남 말 하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 역시 그 말을 꼭 하고 싶었는데 대통령에 대한 결례가 아닌가 싶어 차마 그 말을 하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노 대통령은 사돈 남 말 하는 일이 잦다. 탈당 의원들을 비난하며 "당을 쪼개 성공한 사례가 없다"고 한 지난 6일 발언만 해도 그렇다. 그거야말로 노 대통령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가.
지도자가 '사돈 남 말 하는' 버릇을 갖고 있다는 건 비극이다. 그건 자신을 객관적으로 관찰할 능력이 박약하다는 걸 뜻하기 때문이다. 아랫사람들은 지도자의 기분을 흡족하게 만드는 쪽으로 '올인'하기 마련이다. 양심적이고 똑똑한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 최악의 판단을 내리는 '집단사고'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의 경제 지도자인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어떤가. 나는 이 회장을 다룬 책을 냈다가 '너무 긍정적이다' '너무 부정적이다'는 상반된 평가를 동시에 받으면서 한 가지 절감한 게 있다. 그건 지도자가 사돈 남 말 하는 것보다는 아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훨씬 더 낫다는 것이다.
이 회장과 삼성을 긍정 평가하는 사람들은 '말'이 아니라 '실적'을 본다. 반면 이 회장과 삼성을 부정 평가하는 사람들은 언행 불일치에 분노한다. 이는 온갖 무리를 해가면서 삼성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걸 목표로 삼는 기존 홍보전략을 재검토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시사저널 사태의 간접적이지만 근본 원인은 삼성의 홍보전략이다. 어느 기업이건 자사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를 막으려는 건 홍보활동의 기본이지만, 여기에도 과유불급(過猶不及)의 법칙은 작동한다.
언론계 사람들은 삼성의 홍보에 감탄하는 동시에 경악한다. 거의 완벽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만약 이 회장이 그런 완벽성에 흐뭇해 한다면, 그거야말로 소탐대실(小貪大失)이다.
그 완벽성은 이해관계자들의 '공감'이 아니라 '굴복'에 의해 이루어진다. 현실적인 힘의 논리에 의해 굴복을 하기 때문에 문제의식은 더욱 커진다. 겉으론 삼성에 부정적인 기사가 유포되지 않으니 평화로운 것 같지만, 속으론 "삼성을 이대로 두면 큰 일 나겠다"는 적대감이 쌓여간다.
삼성이 언론에 의해 자주 비판받는 게 삼성 헤게모니를 위해서도 오히려 바람직한 일이다. 지금 삼성 홍보맨들에겐 진정 삼성과 이 회장을 위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판단할 재량권이 박탈돼 있다. 그들은 조직에서의 자기 안전과 성장을 위해 기존 조직의 법칙을 따르는 것 뿐이다.
● '완벽한' 삼성 홍보, 안으로 곪는다
이 회장이 그간 세상에 유포된 '이건희 어록'을 다시 읽으면서 그간 자신이 사돈 남 말 했던 건 아닌지 되돌아보면 좋겠다. 이 회장은 사내에서의 '아첨'에 저주를 퍼부은 지도자다.
왜 그 원리를 삼성 밖의 사회적 차원에선 실천하지 못한단 말인가? 삼성에 대한 양 극단의 시각보다는 삼성의 '건전한 헤게모니'를 지지하는 중간파가 다수라는 걸 믿는 게 좋겠다.
최소한의 건전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그 다수파는 '삼성 해체' 쪽으로 돌아설지도 모른다. 시사저널 사태를 원점으로 되돌려놓는 데에 일조하면서 삼성의 기존 홍보전략을 전면 재검토하는 이 회장의 현명한 용단을 보고 싶다.
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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