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에서 또다시 장기독재의 망령이 되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말 3선 고지에 안착하며 ‘종신대통령’ 계획을 노골화하고 있는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에 이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대통령도 장기집권을 시도할 것이라는 관측이 속속 제기되고 있다.
브라질 언론은 최근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대통령이 개헌을 통해 집권 연장에 나설 것이라는 정치 전문가들의 전망을 잇따라 보도하며 브라질 정가에 논쟁의 불을 지피고 있다.
12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브라질 정치 전문가들은 “집권 노동자당(PT)이 국민투표를 통한 개헌을 추진, 현행 4년 중임제를 폐지하고 2010년 대선에서 룰라 대통령을 3선 후보로 추대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PT 내에 ‘포스트 룰라’를 이어받을 만한 적임자가 없기 때문에 집권 연장을 위한 비장의 카드로 ‘포에버(Forever) 룰라’를 뽑아 들 수밖에 없다는 것. 룰라 대통령은 국민적 인기가 높기 때문에 헌법개정안을 의회를 거치지 않고 직접 국민투표에 붙이면 개헌이 가능하다는 것이 PT의 계산이다.
아르헨티나에서도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대통령이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10월 치러지는 대선에서 상원의원인 부인을 내세워 집권 연장을 도모하고 있다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부인의 대선 출마설에 대해 키르치네르 대통령이 자신의 별명인 ‘펭귄’의 스페인어 남녀 명사형을 이용, “펭귀노나 펭귀나 중 한 사람이 대선에 나설 것”이라고 언급해 이 같은 관측은 더욱 힘을 받고 있다.
‘제2의 에바 페론’ ‘아르헨티나의 힐러리’ 로 불리는 부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키르치네르는 남편이 대통령에 당선되기 훨씬 이전부터 화려한 정치 경력을 쌓아왔으며, 2003년 대선 캠페인도 진두지휘해 남편의 당선에 일등공신 역할을 한 인물. 현재 지지도는 남편이 52%, 부인이 37%로 누가 출마하더라도 당선은 유력한 상황이다.
키르치네르 대통령이 당선이 확실한데도 부인에게 대권을 양보하려는 것은 아르헨티나가 4년 중임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부부가 번갈아 출마하면 최대 16년까지 대통령 자리를 지킬 수 있다는 계산 에서다.
앞서 3선에 성공한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지난달 열린 취임식에서 “임기 6년에 3선까지로 돼 있는 헌법상 대통령 연임 규정을 없애고 ‘무제한 대선 출마’를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공식 발표한 바 있다. 지난달 의회로부터 18개월간 의회를 거치지 않고도 법률을 제정할 수 있는 ‘대통령 특별입법권’을 부여받은 그는 ‘21세기형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목표로 통신과 전력의 국유화, 에너지 산업에 대한 국가 통제 강화 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초헌법적 백지수표’를 손에 쥔 그는 지난 주 미국 전기회사 AES로부터 최대 전력회사인 카라카스전기(EDC)의 지분을 인수하기로 한 데 이어 12일에는 베네수엘라 최대 통신회사 CANTV의 국유화에도 성공했다. 대선 승리를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에게 바친다는 그의 말처럼, 이제 장기 집권을 위한 개헌만이 정해진 수순으로 남았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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