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입헌군주제를 반대한다. 저번에 드라마 <궁> 이 히트를 치자 우리 나라도 다시 입헌군주제를 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던데, 그런 분들에게 왕족이 지나갈 때 마다 차량통제를 금하는 태국같은 나라에 가보시라고 말씀 드리고 싶다. 암튼 ‘왕’이란 사람을 위해 세금을 내야 한다는 생각은 꿈에도 안해 봤지만, 그러나 왕실이나 왕이 나오는 영화는 다 재미있다. 궁>
여왕 마고, 크리스티나 여왕, 미세스 브라운, 엘리자베스 등등. 사극에는 암투ㆍ시기ㆍ배신ㆍ충성ㆍ사랑 등 인간의 가장 본성적인 욕망들이 넘실거린다. 특히 자신의 신하와 사랑에 빠지는 여왕들의 눈물을 다 모은다면 왕관 가득 찰 터.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짐은 국가와 결혼했다”고 하던데, 그게 어디 국가랑 결혼한 것인가 여왕 자신의 지위와 결혼 한 것이지.
그런데 스티븐 프리어즈 감독의 <더 퀸> 은 현대의 여왕, 그것도 살아있는 엘리자베스 2세의 말년을 내세운다. 뭇 백성들이 투표를 하는 것, 누구 편을 들 수 있는 것의 즐거움을 부러워하는 여왕. 내가 승인을 안 했으니 아직 수상이 아니라며, 최연소 총리인 토니 블레어에게 꼿꼿이 허리를 세우지만, 영화 속의 여왕은 돋보기 안경을 쓰고, 점퍼를 입고 랜드로버 차를 몰고 다닌다. 스티븐 프리어즈는 코스튬 드라마로 불리우는 영국식 사극의 전통에서 이탈하여, 처음으로 사랑에 빠진 여왕 대신 할머니이며 어머니인 여왕을 내세운다. 여왕은 사실 맘(monㆍ엄마)과 맴(ma'amㆍ전하) 사이에 서 있다. 더>
물 속에 박힌 차를 둔 채, 혼자서 울음을 터뜨리는 여왕. 그 앞에 나타난 아름다운 사슴 한 마리야말로 아름답고 연약했던 왕비, 죽은 다이아나의 혼령은 아닐까.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엘리자베스 여왕과 살아 생전의 다이아나 모습이 살짝 교차 편집될 때 깨닫게 된다. 너무 달라 보이는 그녀 둘은 그러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한 번도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한 여자들. 다른 사람의 눈동자에 궁전을 짓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
<더 퀸> 은 타블로이드판 신문과 파파라치의 표적이 되는 현대의 왕족이 살아 남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 크리스티나 여왕도, 심지어 피비린내 나는 신ㆍ구교도의 전쟁 한 가운데 있던 여왕 마고조차 일찍이 이렇게 많은 카메라-총(‘찍다’와 ‘쏘다’는 같은 슛(shot)으로 표현된다) 앞에 노출된 적은 없었다. 그래서 언젠가 다이아나처럼 자신 역시 사람들의 애도와 추모 속에서 이승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예감하는 여왕의 마지막은 많은 사극 속의 여왕보다 아름답게 인간적이다. 더>
<더 퀸> 은 영국이 아직도 왜 입헌 군주제를 필요로 하는지에 대한 무언의 지지서 같은 것이다. 나 같은 입헌 군주제 반대론자들마저도, 우리나라에도 저런 입헌군주제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살짝 상상하게 만든다. 더>
영화평론가 × 대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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