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야, 그건 남자들 일이란다.”
미국 남부 버지니아주의 부유한 집안에서 5남매 중 고명딸로 태어난 드류 길핀 파우스트(59ㆍ사진)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에게 이런 말을 들으며 자랐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부잣집 마나님’으로 키우려던 부모님 곁을 일찌감치 떠나 학문의 세계에서 남자들의 전유물로 생각되던 것을 하나씩 성취해 갔다.
그리고 11일 미국 최고의 명문 사학인 하버드대학의 28대 총장으로 임명됐다. 하버드대가 여성을 총장으로 임명한 것은 이 대학 371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하버드대가 여성 총장을 임명함에 따라 미국 동부의 8개 명문 사학인 ‘아이비리그’ 총장의 절반이 여성인 시대가 열렸다.
파우스트 신임 총장이 박사학위를 받고 25년 동안 강의를 한 펜실베이니아대의 총장은 에이미 굿먼이 맡고 있고, 프린스턴대 총장은 셜리 틸먼, 브라운대 총장은 루스 시몬스다. 또 다른 명문 대학인 메사추세츠공과대학(MIT) 총장도 여성이다.
프린스턴대 우드로윌슨 스쿨의 앤 마리 슬로터 학장은 “아이비리그 총장의 절반이 여성이라는 것은 고등 교육계가 겪고 있는 거대한 변화를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에이미 굿먼 펜실베이니아대 총장도 “이번 사건은 미국의 고등 교육계에 중요한 정점이라는 신호”라면서 “아이비리그 총장의 반이 여성이라는 것은, 이제 여성이 평등한 기회를 쟁취하는 데 어떤 제한도 없을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외신들은 정계에서도 첫 번째 여성 하원의장을 배출하고 내년에는 첫 번째 여성 대통령까지 선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들며 미국의 강력한 여성 파워를 반영하는 것으로 풀이했다.
파우스트 신임 총장은 “내 총장 선임은 우리보다 불과 한 세대 전 여성들조차 갖지 못했던 기회를 상징한다”면서도 “나는 하버드대의 여성 총장이 아니라 하버드대의 총장”이라고 말했다.
발표 후 기자회견에서 “이번 사건이 대학에서 성 불평등의 종료를 의미하느냐”는 질문을 받고는 “물론 아니다, 아직도 할 일이 많다”고 대답했다.
파우스트 신임 총장은 하버드대에서 학부나 대학원 수업을 듣지 않은 외부 출신 총장이라는 점에서도 매우 드문 사례다.
그는 1999년 하버드대에 인수된 래드클리프 고등학문연구원 학장으로 2001년 하버드대에 부임했다. 동료 교수들과의 갈등으로 물러난 전임 로런스 서머스 총장과 달리 매우 사려 깊고 화합을 이끌어내는 인간적인 리더라는 평가를 듣는다.
학장으로서의 경영 능력도 인정 받았다. 그의 부임 당시 래드클리프 연구원은 하버드의 10개 단과대 중 가장 작고 전임교수나 연구원조차 없었으며, 300만달러 이상의 예산 삭감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비용 감축 등 구조조정 후 수십명의 석학을 영입하고 산하 슐레진저 도서관을 여성사 분야 최고의 도서관으로 키워냈다. 뿐만 아니라 놀라운 기금 모금 수완을 발휘, 2002년 회계연도에 4,930만달러에 불과했던 이 연구원의 기금을 현재 4억7,300만달러로 키워 놓았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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