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이 사외이사 비중을 축소하지 마라. 스톡옵션 부여는 경영성과 달성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지난해 KT&G를 공격하며 악명을 떨친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 연합의 주장이 아니다. 국내 주식형펀드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이 마련한 의결권 행사 지침이다.
국내 펀드시장의 확대에 힘입어 몸집이 커진 펀드들이 적극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올해 정기주주총회 시즌에서는 이런 기관투자가의 활동이 주목을 받을 전망이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이사 및 감사 선임과 경영권 분쟁 등 세부적인 사안과 관련한 구체적인 의결권 행사 기준을 마련했다. 방향은 투명경영 강화.
최고경영자(CEO)와 이사회 의장 직책을 분리하는 안건에 대해서는 찬성표를 던지고, 정당한 사유 없이 두 직책을 합치려는 시도에는 반대하기로 했다.
이사회에 힘을 실어줘 경영진 감독 기능을 강화한다는 의도다. 또 이사 선출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뤄지도록 하기 위해 비민주적 투표 방식에 반대하기로 했다.
이사회 참석률이 일정 수준 이하인 사외이사 후보에 대해서는 선임을 반대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 사외이사 비중을 낮추는 안건에 대해서도 반대할 방침이다. 회사가 임직원들에게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을 부여하는 데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찬성하지만 특정 경영성과 달성을 조건으로만 동의해 준다는 원칙도 세웠다.
구재상 미래에셋자산운용 사장은 "이는 투자 대상기업의 성장 잠재력과 경쟁력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국내 주식형 펀드 수탁고는 12조4,000억원(8일 기준)에 달하며, 호텔신라(14.52%), 대우자동차판매(14.25%) 등 30개 기업의 지분을 5% 이상 보유하고 있다.
'장하성 펀드'로 불리는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KCGF)는 태광산업, 대한화섬 등 8개 기업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KCGF는 주총을 앞두고 이들 기업에 펀드가 추천하는 사외이사나 감사 후보를 내세웠다. 사외이사나 감사와 관련된 정관을 개정해 이들의 활동을 더욱 강화할 방침이다. 벽산기업에 대해서는 대주주 지분 20%를 소각하라는 요구를 제기하기도 해 주총 결과가 주목된다.
호텔신라(13.42%), 무학주정(11.79%) 등 12개 기업의 지분을 5% 이상 보유 중인 한국투자신탁운용 역시 이번 주총에서 의결권 행사 지침을 마련했다.
한국투신운용 관계자는 "경영 간섭은 하지 않을 방침이지만 투자자의 이익에 반하는 안건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의결권을 행사할 것"이라며 "현재 회사별로 보내오는 주총 의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펀드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는 기업의 투명경영, 합리적 의사 결정에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다"면서도 "경우에 따라 기업 입장에서는 지나친 경영 간섭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말했다.
진성훈 기자 blueji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