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날까지 배우고 싶습니다."
올해 방송통신고 졸업식이 열린 11일 서울 경기여고 강당. 세 아들과 딸 하나에 둘러싸인 김옥순(74)씨의 감회는 남달랐다. 일제시대에 태어나 6ㆍ25전쟁 등 우리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살아오며, 거의 평생을 남편과 자식들은 물론 친동생 뒷바라지에 매달렸던 터라 김씨에게 공부는 언제나 가슴 한켠의 한(恨), 그 자체로 남아 있었다.
1999년 중학교 입학 검정고시에 합격한 김씨는 서울 송파구 한림중을 거쳐 2004년에 경기여고 부설 방송통신고에 입학했다. 늦은 나이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닌다는 것이 쑥스러워서였을까, 한동안은 가족들에게 공부한다는 말도 못했다.
남편 공연규(76)씨는 "아내가 낮에 계속 어딜 나가기에 물어보니 그제서야 '중학교에 다닌다'고 털어놓았다"고 말했다. 그 후로부터 공씨는 아내의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고교 졸업 때까지 승용차로 등교를 책임졌고, 김씨가 도중에 힘들어서 포기하겠다고 하자 오히려 '여기까지 온 것이 아깝지도 않느냐'며 힘을 보태줬다. 남편의 도움으로 김씨는 고교 3년 동안 결석은 물론 지각 조퇴 한번 없이 열성적으로 공부할 수 있었다.
방송통신고를 최고령으로 졸업한 김씨에게 이날 졸업식은 하나의 끝이자, 또 하나의 시작이다. 3월 방송통신대 가정학과 입학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만 다녀오면 아픈 것도 다 낫는 것 같다"는 김씨는 새로운 대학생활에 대한 기대감도 강하게 나타냈다.
이날 방송통신고 전국 39개 학교에서 열린 졸업식에서는 모두 3,958명이 졸업장을 받았다. 방송통신고는 개인적인 사유나 경제여건 때문에 학업의 기회를 얻지 못한 이들을 위해 1974년 설립됐으며 지금까지 18만7,0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박원기 기자 o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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