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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출입국관리소 화재/ 참혹했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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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출입국관리소 화재/ 참혹했던 현장

입력
2007.02.11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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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체류자라는 올가미가 씌워진 그들에겐 탈출구가 없었다. '코리안 드림'을 이루겠다는 희망의 날개가 꺾인 가운데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길마저 뜨거운 불구덩이가 삼켜버린 것이다.

11일 오전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화재참사 현장에는 9명의 목숨을 앗아간 화마(火魔)의 잔영이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시커멓게 그을린 쇠창살 사이로 보이는 보호실 출입문에는 수용자들이 불길을 피해 필사의 탈출을 시도한 듯 손톱으로 긁은 듯한 자국이 눈에 띄었다.

외국인 수용시설인 보호동 3층과 당직 상황실인 2층 경비과 사무실은 화재가 나기 직전인 10일 밤부터 어수선했다. 취침시간인 밤 10시가 한참 지났는데도 304호 보호실에서는 TV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그만 잠을 자라"는 경비대원(청원경찰)과 "왜 그러느냐"는 수용자들 사이에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304호의 소동'은 계속됐다. 밤 11시께부터 재중동포 A(39ㆍ사망)씨가 화장지에 물을 묻혀 보호실 쇠창살 바깥쪽에 설치한 폐쇄회로TV의 카메라 렌즈를 가려 '먹통'을 만들었다.

관리사무소 직원들과 경비대원들이 제지했지만, A씨는 "심심하다"며 말을 듣지 않았다. CCTV 렌즈를 둘러싼 실랑이는 날을 새며 두세 차례 더 계속됐다.

경비대원 조모씨가 마지막으로 CCTV에서 화장지를 떼어낸 지 5분 뒤인 11일 오전 3시55분께 갑자기 304호실과 305호실 사이 천정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연기는 순식간에 3층 6개 보호실 전체로 스며들었고, 불기둥은 맹렬한 기세로 304, 305호를 덮쳤다.

하지만 화마가 토해내는 무서운 소리에도 불구하고 보호동 수용자 55명은 단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화재가 발생하면 자동으로 울려야 할 화재경보기가 작동하지 않았고, 당직실 직원이 수동으로 화재경보기 스위치를 눌렀지만 끝내 울리지 않았다.

304, 305호실 수용자들이 불길에 놀라 쇠창살을 두드리며 "살려달라"는 비명을 지르고서야 나머지 보호실 수용자들은 화재가 났음을 알아챘다.

"비명소리에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어보니 수용자들이 공포에 떨며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수건을 물에 적셔 얼굴을 감쌌지만 그 직후 의식을 잃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연기에 질식해 여수 전남병원으로 옮겨진 중국인 박모(32)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몸서리를 쳤다.

304호에서 불기운이 번지자 3층 전체는 "문 열어!" "문 열어!"하는 소리가 비명과 함께 뒤섞였다. 그러나 문은 굳게 닫힌 채 열리지 않았다. 불이 났다는 소리를 듣고 2층에서 근무 중이던 당직자가 현장으로 올라갔지만, 정작 중요한 보호실 쇠창살 열쇠를 놔두고 가는 바람에 수용자를 빨리 대피시키지 못했다.

당직자가 다시 2층 사무실로 내려와 보관 중이던 열쇠를 갖고 보호실로 뛰어갔을 때는 이미 검은 연기와 시뻘건 불기둥이 쇠창살에 꼼짝없이 갇혀버린 304~306호 수용자들의 목숨을 옥죄기 시작한 뒤였다. 여기저기서 고통을 호소하는 울부짖음이 귀청을 찢었고, 연기에 질식한 수용자들이 나무토막처럼 쓰러져갔다.

수용자들은 유독가스를 마시지 않기 위해 수건과 이불을 물에 적셔 얼굴에 뒤집어 쓰고 바닥에 엎드렸지만 허사였다. "암흑 상태에서 119대원들이 문을 열어줘 간신히 목숨을 구했습니다."(무타알ㆍ38ㆍ키르키즈스탄)

화재신고 4분만에 현장에 도착한 소방대원들이 수용자들을 구조하기 시작한 것은 오전 4시8분께. 불길은 1시간여 만에 잡혔지만, 9명의 외국인은 이미 불귀의 객이 된 뒤였다.

여수=안경호 기자 k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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