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대륙에는 소가 없었다. 끝없이 펼쳐진 서부 대평원에는 수백만 마리의 버펄로 떼들과 버펄로를 양식으로 삼는 인디언들이 수천년 동안 공생관계를 유지하며 살았다. 소는 지리상 발견 이후 유럽인과 함께 신대륙으로 이주했다.
신대륙은 유럽인들 만큼이나 소 떼들에게도 천국이었다. 텍사스에서 사육되기 시작한 스페인산 소는 빠르게 번식했다. 개체수가 급속히 늘어나자 유럽인들은 새로운 목초지를 찾아 소 떼를 몰고 서부 대평원으로 진출했다.
● 버펄로ㆍ인디안 대학살극
미국 전체 면적의 40%에 달하는 광활한 평원을 소 사육지로 만들기 위해서는 두 가지 선결되어야 할 문제가 있었다. 수천년 동안 그곳의 주인이었던 버펄로와 인디언이었다. 소에게 풀을 먹이기 위해서는 버펄로가 사라져 주어야 했고, 유럽인들이 안전하게 거주하기 위해서는 인디언들이 사라져 주어야 했다.
1869년 대륙횡단철도가 개통되자 서부 대평원에서는 역사상 유래를 찾기 힘든 대학살극이 연출되었다. '버펄로 빌'(Buffalo Bill)이라 불리던 버펄로 전문 사냥꾼들은 평원에 가득 찬 버펄로 떼들을 닥치는 대로 살육했다. 학살된 버펄로 가운데 일부는 군인과 철도노동자의 식량으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가죽만 벗겨내고 그대로 방치되었다.
1873년 한 해에만 400만 마리의 버펄로가 학살되었고, 몇년 후 버펄로는 서부 대평원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과거 버펄로 떼들의 먹이였던 대평원의 풀은 소 떼들의 몫이 되었다.
버펄로 대학살과 동시에 인디언 대학살이 자행되었다. 살아남은 인디언들은 양식인 버펄로가 멸종되자 보호구역에 수용되어 정부의 식량 배급에 매달려야 했다. 식량은 인디언의 땅을 빼앗은 목축업자들이 공급한 쇠고기였다. 대학살이 끝난 후, 버펄로와 인디언의 땅이었던 서부 대평원의 주인은 소와 카우보이로 바뀌었다.
유럽인들은 지방질이 많은 쇠고기를 좋아했다. 서부 대평원을 차지한 유럽인 목축업자들은 지방질이 많은 쇠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소 떼들에게 중서부 곡창지대에서 남아도는 옥수수를 먹여보았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옥수수를 먹여 살을 찌운 미국산 쇠고기는 영국과 유럽 대륙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 후 미국 소들은 한두 해 목초지에서 방목된 후 한동안 옥수수로 몸집을 불린 다음 자동화된 대형 '정육 공장들'에서 도살되었다.
● 인공적 쇠고기가 초래한 재앙
그러나 유럽인들의 입맛에 맞는 쇠고기를 얻기 위해 인위적으로 살을 찌우는 것은 소의 생리에는 맞지 않았다. 소들은 갖가지 소화기 질환에 시달렸고, 급기야 광우병까지 발생했다.
질병의 방지와 치료를 위해 소에게 항생제를 비롯한 다량의 약물이 주입되었다.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문명비평가인 제레미 리프킨은 <육식의 종말> (1993)에서 지방질이 많은 미국산 쇠고기의 탄생은 소, 인간, 환경 모두에게 거대한 재앙이었다고 말한다. 육식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가 한ㆍ미간 첨예한 통상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손톱 만한 뼛조각 하나 때문에 수입물량 전체를 돌려보낸 것은 얼핏 보면 치졸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미국산 쇠고기를 한우와 같은 자연물로 볼 수는 없다. 미국인인 제레미 리프킨조차 미국산 소는 먹지 않는다.
전봉관ㆍ한국과학기술원 인문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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