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한눈에 본다. 실같이 흐르는 한강을 쫓다보면 시선은 어느 새 인천만을 적시는 서해에 이어진다. 산굽이를 돌아 북으로 뻗은 통일로 끝쪽에는 북녘땅 개성의 송악산이 거무스레한 윤곽을 보인다….'
1974년 5월12일 한국일보는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남산타워전망대(현재 남산 N타워) 준공을 앞두고 르포기사를 실었다. 독자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은 시원한 특종이었다. 하지만 이 기사가 나간 후 박정희 대통령이 노발대발하고, 취재기자는 물론, 사회부장과 편집국장까지 남산 정보기관에 끌려가 곤욕을 치러야 했다.
남산타워에서 개성의 송악산이 보이면 개성에서도 당연히 남산타워가 잡힐 것이므로 북한 장거리포 목표물이 될 수 있고, 또 북악산이 훤히 보인다면 불순분자가 전망대에서 고성능 무기로 청와대를 공격할 수 있는 이적성 정보를 흘렸다는 게 이유였다.
워낙 호되게 당한 터라 이듬해인 75년 8월 중순 남산타워가 완공됐으나 어디에도 보도되지 못했고, 타워입구에는 '사용금지' 팻말이 내걸렸다. 이 시설이 공개된 것은 완공된 지 5년후, 박 대통령이 사망한 후 1년이 지난 80년 10월이었다. 전망대가 시민에게 돌아간다는 소식을 제일 먼저 알린 것은 공교롭게도 한국일보였다.
전후사정을 볼 때 남산경관을 망치는 흉물로 눈총을 받고 있는 남산타워 건립이 박 대통령 지시에 따른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잘 알려진 대로 박 대통령 재임시절은 남산 수난시대였다.
외인아파트를 비롯, 재향군인회와 중앙공무원교육원 건물, 국립극장, 어린이회관 뿐만 아니라 타워호텔, 하얏트호텔 등에 이르기까지 남산은 툭하면 그 터를 내주어야 했다. 거의 남산학살이라 할 만하다. 산림녹화를 국가 주요시책으로 삼았던 박 대통령이 왜 남산을 망가뜨렸는지는 지금도 미스터리이다.
90년대 들어 시작된 '남산제모습찾기' 사업이후 남산은 우리에게 성큼 다가왔다. 수도방위사령부와 안기부가 옮겨가고 외인아파트가 철거된 것만 해도 큰 변화였다.
오세훈 시장은 한발 더 나아가 남산을 서울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로 만들고자 한다. 1단계로 2008년까지 195억원을 들여 각종 엔터테인먼트 기능을 갖춘 남산으로 가꿀 계획을 세우고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중구도 북측 순환도로변 이미 훼손된 10만평을 생태지향적인 자연공원으로 만드는 '남산자락 꿈의 동산'이라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펜스철거하고 도로포장을 바꾸는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이벤트성이거나 단기간에 천문학적 예산을 쏟아 붓는 구상일 뿐 아직까지 어디에도 10년, 20년을 내다보는 남산복원 장기플랜은 보이지 않는다.
그 사이 남산자락 회현동과 충무로 일대에 중대형 주상복합아파트가 잇달아 생기며 남산이 포위되고 있다. 또 남산 기슭을 도려내고 들어선 타워호텔이 최근 부동산개발업자에게 넘어간 후 이 일대에는 재개발 바람이 불어 닥칠 조짐이다.
한국일보는 남산타워 필화 사건 외에도 남산과 인연이 깊다. 1978년부터 매월 셋째주 일요일에 여는 거북이마라톤대회는 30년 가까이 달려온 대표적인 시민행사이다.
이번 주말(10일) 한국일보는 남산 아래 남대문로에 임시둥지를 튼다. 이곳에 머무는 기간은 오 시장의 임기와 비슷하다. 오 시장의 프로젝트가 성공을 거두어 상처투성이인 남산에서 하루빨리 푸른 새살이 돋길 바라며 이 동안만이라도 기꺼이 '남산 지킴이'가 되려고 한다.
최진환 사회부차장대우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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