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바카나마 알아철코니 주납수 구수은백금'. 고등학교 화학 시간에 선생님을 따라 주문처럼 외웠던 '이온화 경향' 순서다. 칼륨 바륨 칼슘 나트륨 마그네슘 알루미늄 아연 철 코발트 니켈 주석 납 수소 구리 수은은 백금 금 등의 원소이름 앞 글자를 순서대로 늘어놓았다. 일단 입에 익으면 꽤 쓸모가 있다.
가령 묽은 황산(H2SO3)에 아연(Zn)을 넣으면, 아연이 수소(H2)보다 이온화 경향이 크기 때문에 수소 자리를 빼앗아 황산아연(ZnSO4)이 되고, 수소는 방출된다. 맨 뒤의 금은 반응성이 떨어지는 안정된 금속으로서 지금도 사랑을 받는다.
▦머리글자를 따서 외우는 이런 버릇은 주입식 교육을 받은 세대의 전유물도 아니다. 한때 '용모를 단정히 하라(Dress Up)', '입 다물고 많이 들으라(Shut Up)' 등 이른바 '세븐 업(7_Up)'이 수입돼 '멋진 노년을 위한 일곱 가지 지침'으로 유행했다.
인간은 삼라만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되도록 크기나 색깔 등의 속성을 기준으로 우선 골라서 갈라 놓고, 비슷한 것끼리 다시 모으고, 가지런하게 늘어놓고 보는 것을 즐긴다. 그런 선택과 분류, 조합과 배열을 거쳐야 알기 쉽고, 마음도 편해지는 모양이다.
▦최근 국내에서 발행되는 책 가운데 소설을 제외하고, 가장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게 성공 지침서다. 세상 곳곳에 흩어져 있는 지혜와 경험을 각각 다른 각도에서 긁어 모으고, 간추려서 새롭게 보여주는 책들이다.
인생의 성공 지침을 'I Believe'(믿음)으로 요약해 소개한 책도 그런 베스트셀러에 들어있다. 'I believe in myself(자신을 믿을 것)' 'Be Passionate and want it(열정적으로 바랄 것)''Very very Persistent(악착같이 버틸 것)' 'Expect failure(실패도 예기할 것)'.
▦발상은 절묘하지만 열차시각표처럼 꿰어 맞춘 듯한 이런 '지식 배치표'에서 깊은 맛의 지혜를 읽을 수는 없다. 대형서점에서 대량으로 책을 사들여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려 독자의 관심을 끄는, '사재기'를 통한 베스트셀러 만들기를 생각하면 더욱 손이 가지 않는다.
한동안 출판사나 저자ㆍ번역자 주변 사람들을 동원하더니 이제는 아예 인력회사와 계약해 서점과 독자의 눈을 속인다. 내용과 판매에서 이런 현대적 기법과 거리가 먼 <논어> 가 중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는 소식이 부러워지는 이유다. 논어>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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