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사유재산보호법인 물권법의 제정을 앞둔 중국에서 ‘민간기업 원죄(原罪) 논쟁’이 내연 중이다.
개혁 개방 초기 정부와 권력의 비호를 받는 기업인들이 국유재산을 불법적 얻거나, 헐값에 사들여 막대한 부를 축적했던 것을 일컫는 ‘원죄’는 빈부 격차가 날로 커지는 상황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커다란 정서적인 문제로 등장한 것이다.
황멍푸(黃孟復) 전국공상연합회 주석은 지난달 31일 2006년 민영경제발전 형세 분석회에서 “민간 기업인의 부의 축적이 비리와 원죄를 통해 이뤘다는 시각은 잘못된 것”이라며 원죄론을 정면 반박했다.
황 주석은 “몇몇 기업인이 범죄에 연루됐지만 모든 기업인들이 같은 굴레를 쓸 수는 없으며, 범죄 기업인들이 결코 전체 사영 기업을 대표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그는 원죄 정서가 그간 정책 결정자들에게 많은 압력을 행사했고, 기업에게는 부담이었다고 강조했다.
앞서 후야오방(胡耀邦) 전 총서기의 장남인 후더핑(胡德平) 공상련 제1서기, 차기 총리 후보로 거론되는 왕양(汪洋) 충칭(重慶)시 서기, 류옌동(劉延東) 공산당 통일전선부 부장 등도 나서 민간기업의 태생적 한계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촉구했다.
중국 정부가 민간기업 방어에 적극 나선 것은 민간기업에 대한 인민들의 시선이 그만큼 악화했기 때문이다. 사영기업의 자본 축적과정은 1978년 개혁 개방 선언이후 15년 만인 1990년 상반기 완성됐으나 그 양상이 매우 약탈적이었다.
당시 자원을 독점했던 당과 정부가 자원을 분배해 민간부문을 창출하면서 국영기업 간부, 권력자, 정치권력 주변인들을 부자로 키웠다. 국영기업의 재산, 국유 재산, 토지 등의 불법적, 탈법적으로 처분돼 일확천금을 버는 사례가 비일비재했고, 1982년부터 10년간 국유자산 손실액은 5,000억 위안(현재가로 641억달러)에 달했다.
이로 인해 1990년대 중반 이미 총가구의 7% 부유층이 총 금융자산의 30.2% 소유했고 90년 후반에는 15%의 자산가가 중국 국가 전체 부의 85%를 독차지했다. 허칭롄(河淸漣) 전 광둥(廣東)성 지난대 교수는 저서 ‘중국 현대화의 함정’를 통해 “중국의 경제 개혁은 권력을 통한 시장 창조의 과정이며 그 양상은 유례없이 약탈적 이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지난해 천량위(陳良宇) 전 상하이(上海)시 당서기가 막대한 사회보장기금을 푸시(福禧) 그룹에 대출해주는 등의 정경 유착 비리가 끊임없이 터지면서 민간 기업의 신뢰도는 곤두박질쳤다. 물론 도농간 소득격차가 3.2배에 달하고, 도시 상위 10% 계층의 자산이 하위 10% 보다 9.2배 많은 양극화 현상, 사유 동산 및 부동산의 보장을 명문화한 물권법의 입법 움직임도 부의 정당성 문제를 증폭시키고 있다.
중국 정부는 현재 사영 기업인을 엄호하는 편에 섰지만 중국 경제체제와 재원분배의 투명성이 제고되지 않는다면 반 기업정서와 부자들에 대한 곱지 않는 시선은 쉽게 누그러지지 않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2006년말 중국의 사영 기업인은 495만명에 달한다.
베이징=이영섭 특파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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