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어느 에세이스트 책을 보다가 이런 구절을 보고 절망한 적이 있었다. '어느 시대나 좌파로 살 수 있는 인간적 소양을 가진 사람은 아주 적다. 우파는 자신의 양심을 건사하는 일만으로도 건전할 수 있지만, 좌파는 다른 이의 양심까지 지켜내야 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문구를 보고 내가 절망한 것은, 내가 평생 우파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근원적인 한계를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나에게 양심을 건사하는 일이란, 책을 읽고 또 읽어도, 고민을 하고 또 해보아도, 도무지 알 수 없고, 종잡을 수 없는, 어떤 안개 같은 것이었다.
한데, 이 시대엔 그 어려운 문제를 쉽게 해결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겸손치 못하게 나는 우파요, 쟤는 좌파요, 라고 말을 한다. 쟤는 좌파요, 라는 말 속엔, 그래도 저 사람은 다른 이의 양심을 지켜내기 위해 애쓰고 있소, 라는 뜻이 포함되었다는 것을 모른 채, 그저 험담처럼 내뱉는다. 나는 또한 내 주위에 진정한 좌파들을 보지 못했다.
얼치기 좌파들만이 '나, 좌파요'라고 떠벌리고 다닌다. 진정한 좌파들이란, 진정한 우파를 통과한 다음에야 나오는 법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절대 자신이 '좌파'라 말하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그 사람들의 양심에 위배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소설가 이기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