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4월4일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의 모텔에서 마틴 루터 킹이 백인 과격분자의 총탄에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다섯 달 뒤 멕시코시티에서 올림픽이 열렸다. 육상 200m에서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한 미국의 토미 스미스와 3위 입상자 존 카를로스가 시상대에 올랐다.
성조기가 올라가고 미 국가가 연주되는 순간 이들은 고개를 숙이고 검은 장갑을 낀 주먹을 하늘로 치켜들었다. 흑인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강력한 침묵의 시위였다. 깜짝 놀란 IOC와 미 올림픽위원회는 황급히 이들의 메달을 취소하고 선수자격까지 영구 박탈해 버렸다.
▦스포츠의 순수성이 오염된 사례로 늘 들먹여지는 사건이다. 1921년 스위스 로잔 IOC총회에서 제정ㆍ공포된 올림픽헌장은 참가선수 누구라도 민족ㆍ종교ㆍ정치 등 이유로 차별 받을 수 없다는 등 조항마다 스포츠의 비정치성을 강조하고 있다.
오직 청년의 육체적 노력과 도덕적 자질을 일깨워 세계 평화와 인류애에 공헌하는 데 올림픽의 목적이 있다고 규정지었다. 각 경기도 국가 대항전이 아닌 개인 간의 겨루기일 뿐이어서 개최지에 나라 아닌 도시 이름을 쓰게 했다. 월드컵은 한일월드컵이지만 올림픽은 서울올림픽인 까닭이다.
▦그래도 올림픽이 어디 순수하기만 했으랴. 손기정과 제시 오웬스의 신화를 낳은 1932년 베를린올림픽은 히틀러가 제3제국의 힘과 아리안혈통의 우수성을 과시하는 선전장으로 만들었고, 80년 모스크바올림픽과 84년 LA올림픽은 아프간전쟁 등을 빌미 삼은 미ㆍ소 두 초강대국의 자존심 싸움으로 망가졌다.
무엇보다 72년 테러리스트 집단 ‘검은 9월단’에 의해 선수촌에서 이스라엘 선수단 11명이 살해된 뮌헨올림픽은 근대올림픽 사상 가장 비극적인 대회가 됐다. 애당초 스포츠의 순수성이라는 것 자체가 실현 불가능한 이상이었다.
▦올림픽헌장을 그대로 적용하는 아시안게임에서 우리 선수들이 ‘백두산 세리머니’를 벌여 한ㆍ중 간에 신경전이 벌어졌다. 국내 여론은 대체로 ‘쾌거’ 쪽이다. 하지만 가상한 뜻과 별개로 솔직히 이번 일에선 우리가 당당하기 어렵다. 비록 공허하더라도 스포츠의 탈정치 명분에는 이의를 달기 힘들다.
중국인들의 행태가 괘씸하지만 스포츠 마당에서 국가적 구호를 내건 행동을 마냥 대견해 할 일만은 아니란 얘기다. 하긴 이 일도 따져 보면 중국 문제에선 왠지 큰 목소리를 못 내온 정부에 그 책임의 일단을 물어야 할 것도 같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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