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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준의 미디어 비평] '실사구시'의 후보 검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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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준의 미디어 비평] '실사구시'의 후보 검증을

입력
2007.02.07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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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미국에서는 내년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관심을 끄는 인물중의 한 사람은 민주당에서 뜨고 있는 올해 45세의 흑인 배럭 오바마다.

오바마는 초선의 일리노이주 연방 상원의원으로 워싱턴에 이름을 내민지 불과 2년이 지난 정치 신인이다. 이런 그가 민주당 차기 경선전에서 주목받고 있다. 전국 여론조사에서 20% 안팎의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에게는 가장 강력한 경쟁자다.

흥미로운 점은 오바마의 출생과 성장 배경에 대한 미국 언론의 보도 태도다. 오바마의 유년기는 보통의 미국인과는 많이 다르다. 최근 본인의 고백에 따르면,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아프리카 케냐 출신으로 볼보 공장 노동자였으며, 어머니는 미국 캔자스 출신 백인으로 팝 그룹 '아바'의 백업 가수였다.

부모는 그가 걸음마 시절에 이혼했다. 아버지는 케냐로 돌아갔고 어머니는 인도네시아계 남자와 재혼했다. 어린 오바마는 하와이와 인도네시아에서 자랐다. 커서는 하버드 법대를 졸업했으며 시카고대에서 교수를 지냈다.

미국의 유력 언론은 그의 어린 시절을 '다양한 문화를 접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우리나라 같으면 성장 배경을 둘러싸고 구설수에 오를 소지가 많은 이력이다.

최근에는 그가 인도네시아에서 이슬람 초등학교에 다녔다는 주장이 인터넷 언론에서 제기됐다. 사실 무근으로 밝혀졌고, 유력 언론들은 크게 부각시키지 않았다. 대신 '혜성처럼 등장한' 젊은 정치인 오바마의 정치적 능력과 정책적 입장, 비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실사구시적인 태도다.

우리의 역대 대선에서 후보 검증론은 상당한 파괴력을 가졌다. 대선 후보의 자질과 지도력, 정책, 비전은 소홀하게 다룰 대목이 아니다.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검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문제는 후보의 과거사에 대한 연좌제적 평가이다. 한 개인이 자신의 실존적 의지와는 무관하게 떠안은 숙명적 사실이나 의혹을 공적 영역에서는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과거 대선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출생이나 노무현 대통령 장인의 사회주의 전력, 권영길 민노당 후보 부친의 빨치산 전력 등을 둘러싼 의혹 제기는 일종의 연좌제식 여론몰이였다. 그늘 진 곳에서 자란 독버섯 같은 것이었다.

12월 대선을 앞두고 후보로 거명되는 사람들의 과거사에 대한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다. 연좌제식 여론몰이가 시작될 조짐이다.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은 얼마 전 칼럼에서 "사람들의 관심은 (이명박 박근혜) 두 사람의 '개인적인 사항'과 '옛 이야기'에 쏠려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김대중 주필은 철저한 후보 검증을 주문했지만, 만일 연좌제적 성격을 가진 검증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라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암울할 것이다. 미리 까발려 면역력을 키우자는 주장은 정치 공학적으로는 그럴듯하다.

그러나 선거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연좌제식 여론몰이에 우리 사회가 부담했거나 치를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생각하면 차제에 이 문제에 대한 공론을 다시 한번 정립할 필요가 있다. 한나라당 후보 외에도 범여권과 민노당에서 최소한 각각 한 명의 후보는 더 나올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그들도 연좌제의 올가미를 덧씌우려는 음모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이러면 결국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정글의 법칙'이 횡행하게 된다. 그러면 선거는 난장판이 될 것이다. 승자는 패자에게 가혹할 것이며, 패자는 결과를 마음적으로 승복하지 않을 것이다.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우리의 언론 보도는 지금까지 연좌제식 여론몰이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괴문서가 돌고 있다'거나 '사생활과 관련해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는 보도를 간간이 전하면서 결과적으로 막가파식 여론몰이에 '수수방관'하고 있다.

'누가 무슨 말을 했다'는 '따옴표식' 동정보도에 치우치다 보니 정작 심층적인 정책 이슈는 사라지고 있다. 합리적인 공론 형성을 목표로 하는 사회적 의제 제시에 소홀하다 보니, 그 빈 공간을 근거없는 의혹들이 채우고 있다. '보이지 않는 손'은 이런 허점을 노린다.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한 주장은 결국 합리적인 공론의 형성에 방해가 될 것이다. 한 개인이 주체적으로 결단한 '공적 사실'을 중심으로 후보의 리더십을 검증하기에도 시간은 모자란다. 오바마 보도는 우리에게 '실사구시'의 정신을 제시하고 있다.

손영준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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