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지 사회부 기자인 C씨는 메신저에 로그인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은 과도한 살빼기 열풍에 대한 특집기사를 써볼까. 우선 다양한 사례를 수집해야지. " C기자는 곧 메신저 대화명을 '다이어트 실패한 자는 자수해서 광명 찾을 것'으로 바꿨다.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던 그는 메신저 대화상대를 훑어보다 눈에 띄는 대화명을 발견했다.
'저 결혼합니다. 2월10일 명동성당 1시'. 산업부에 있는 동기 하나가 메신저 대화명을 통해 결혼 소식을 알리고 있다. 사회운동을 하는 한 후배는 '한미FTA 반대!'라는 대화명을 써 붙였다.
국내 메신저업계 1위인 네이트온 가입자가 2,000만 명을 돌파했다.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 정도가 네이트온 메신저를 사용하고 있는 셈. 마이크로소프트(MS)의 MSN은 현재 전세계 무려 2억400만 명이 사용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선 유독 2위로 밀려 있다.
바야흐로 전화 대신 메신저로 통하는 시대다. 구태여 채팅까지 엿보지 않더라도 메신저 대화명만 보면 상대방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최근 사회 이슈가 무엇인지 대충 알 수 있을 정도다. 이처럼 메신저가 보편화하면서 네티즌들은 단순한 대화명이나 대화상대 목록을 응용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내고 있다.
특히 대화명은 단순히 자신이 누구인지 상대에게 알리기 위해 만들어졌으나 네티즌들은 온라인에서의 자아를 드러내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툴로 활용하고 있다. SK커뮤니케이션즈는 이날 네이트온 사용자 2,000만 명 돌파를 기념해 네티즌들의 대화명 유형을 분석한 흥미로운 자료를 내놓았다.
예를 들어 실시간 감정표현형은 그때그때 기분을 대화명으로 올려 상대방의 이해를 요구하는 유형. 회사원 현민정(24)씨가 바로 그런 경우다. 그녀의 최근의 대화명은 '상쾌한 아침', '컨디션!꽝', '우울모드' 등이었다.
현씨는 "상사에게 야단을 맞은 뒤 메신저 아이디를 우울하다고 고치자 팀장이 다가와 커피를 건넨 적이 있다"며 "대화명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 풀릴 뿐 아니라 구구절절 내 기분을 상대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니 좋다"고 말했다.
거의 모든 인맥이 메신저 대화상대로 등록돼 있기 때문에 경조사를 알리는 데도 메신저 대화명이 적극 활용된다. 소위 '공지전달형'이 그런 경우. 전시회나 결혼, 돌잔치, 아기 출산에 이르기까지 공지의 대상은 다양하다. 공지전달형으로 분류되는 이용자들은 "상대방이 일정을 잊어버릴 염려가 없고 일일이 전화를 할 필요가 없어 효율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사회참여형'은 메신저가 사회적인 여론을 모아 큰 힘을 발휘하는 경우다. 2002년 11월 미군 장갑차에 치여 사망한 두 여중생을 기리는 '추모리본(▶◀) 달기'가 그 첫 사례다.
2004년 이라크에서 희생된 고 김선일씨 사건에서도 추모리본은 우리 전통 삼베문양(▩)으로 진화해가는 모습을 보였다. 16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기표봉을 상징하는 '㉦달기운동'을 통해 네티즌 스스로 투표참여를 권유하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그밖에 영어 불어 한자 등을 주로 사용하는 '외국어형', 삶의 깨달은 바를 표현하는 '잠언형', 아무도 모를 말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암호형' 등이 주요유형으로 분류됐다.
SK커뮤니케이션즈 관계자는 "메신저가 전화와 가장 다른 점이자 네티즌들이 메신저를 통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메신저가 지닌 강력한 네트워크의 힘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자체 조사에 따르면 메신저를 통하면 평균 4다리 건너 거의 모든 한국인을 만날 수 있다"며 "앞으로 일촌 등 한국적인 특성과 결합해 오프라인 유대도 강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메신저가 진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준모 기자 moon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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