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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우의 과학@영화.com] <6> 안전한 먹거리를 지키는 방법-<에린 브로코비치> <시빌 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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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우의 과학@영화.com] <6> 안전한 먹거리를 지키는 방법-<에린 브로코비치> <시빌 액션>

입력
2007.02.07 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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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굶고 못산다. 먹고 싸고 그 사이에 발생하는 에너지를 이용해서 움직이는 것은 사람을 포함한 살아있는 모든 것의 숙명이다. 물질과 에너지의 끊임없는 흐름이 생명의 본질 중 하나이고 생태계를 지탱하는 힘이다. 이 흐름이 끊기면 생명은 더 이상 생명이 아니다.

이 흐름이 원활하지 않으면 생명은 병 든다. 흐름이 먹을 것과 마실 것에서 시작하므로 그 중요함을 말로 다 할 수 없다. 따라서 먹고 마시는 것은 사람이라면 주장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다. 먹는 것 가지고 장난치는 사람들이 정말 싫다. 천벌을 받을 일이다.

전쟁과 같은 극한 상황이라도 우물에 독을 풀었다면 용서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하물며 탐욕 때문에 먹는 물을 더럽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그런 일이 자주 벌어지고 있다. 실제 일어난 일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영화들, <에린 브로코비치>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 1999)와 <시빌 액션> (스티븐 자일리언 감독, 1998)은 모두 물을 더럽힌 사람들에 맞서 싸운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에린 브로코비치는 두 번의 이혼에서 얻은 아이들 셋과 함께 살고 있다. 은행 잔고는 바닥을 쳤고 직장도 없다. 학력이나 경력, 어느 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그에게 일자리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 우연과 행운이 겹쳐 작은 변호사 사무실에 사환으로 취직하지만 그곳에서도 사람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사무실에서 일하던 브로코비치는 우연히 한 마을의 의료비용이 급격히 늘어난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것이 6가 크롬을 함유한 폐기물을 상수원에 방출한 PG&E라는 대기업 때문이라는 것을 밝혀낸다. 6가 크롬은 치명적인 발암물질이다. 에린과 변호사 에드 마스리는 PG&E와 지루한 싸움을 시작한다.

<시빌 액션> 의 배경인 웨스트 워본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마을의 백혈병 사망률이 갑자기 증가했고 그 원인이 베아스트리스 식품회사와 W.R. 그레이스 회사에서 방출한 톨루엔과 아세톤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백혈병으로 희생된 어린 아들을 둔 앤 앤더슨은 책임을 묻기 위해서 변호사 잰 슐리츠먼과 함께 대기업을 변호하는 대형 법률사무소의 횡포에 맞선다.

진실이 희생자 쪽에 있고 용기 있는 변호사와 전문가들이 뛰어든다고 문제가 쉽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진실을 덮어 보려는 거대한 회사들은 돈으로 회유하고 힘으로 윽박지른다. 다행히도 영화로 만들어진 두 사건은 모두 희생자들의 진실이 밝혀지는 쪽으로 결말이 났다. 거대한 회사들은 거액의 배상금을 물어야 했고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 여럿이 감옥에 갔다.

의도적이었든 몰라서 그랬든 많은 사람이 먹고 마실 것에 독을 풀었던 사람들의 명단은 아주 길다. 최초의 공해병으로 알려진 이타이이타이병은 미쓰이 아연공장에서 19세기 말부터 배출한 카드뮴이 땅에 스며들고 그것이 다시 농산물에 쌓여서 생긴 중독 현상이다.

증상은 1920년대부터 보고되기 시작했으나 일본 정부는 1960년대에 들어서야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1932년부터 신일본질소비료 공장에서 나온 유기수은이 1950년대 중반에 신경계 질병으로 나타난 것이 미나마타병이다. 우리나라에서도 1974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온산의 비철금속단지에 둘러싸여 살던 주민들에게서 1983년 무렵부터 이타이이타이병과 비슷한 증상이 나타났고 주민들은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 했다.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을 비롯해서 이곳 저곳에서 먹고 마실 것에 오염 물질을 뿌려 놓았던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있는지.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원인은 간단하다. 산업화 때문이다. 카드뮴이나 크롬 같은 물질들은 자연 상태에서 농축되어 있는 경우가 드물고 따라서 그것이 먹거리에 딸려와 사람이 섭취할 확률은 아주 희박하다. 하지만, 그런 물질들을 대량으로 산업에 이용하면서 사람들이 치명적인 농도의 물질들에 노출될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성급한 사람들은 자연이 스스로 독을 희석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원인이 간단하다고 해결책이 빤히 보여도 문제가 쉽게 풀리는 것은 아니다. 산업화를 그만두고 자연으로 돌아간다면 해결은 쉽겠지만 산업화와 함께 빨리 돌아가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세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결국, 별 수 없이 위험을 등에 업고 살아야 한다.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지적했듯이 위험사회에 사는 사람들이 꿈 꿀 수 있는 유토피아는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최악의 것을 예방하는 것이 유토피아로 가는 길이다. 불안을 등에 지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끈이 맺어지고 정치적 힘이 생겨난다.

먹고 마시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영화 속의 주인공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위험을 등에 진 사람들 스스로?연대가 필요하다. 온산병이 언론에 처음 보도된 것은 첫 발병 이후 2년 2개월이 지난 1985년 1월 18일이었다. 이튿날 환경청에서 나온 발표는 공해병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봄에 실시된 열흘간의 역학 조사 결과도 공해병의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정치 권력, 그리고 자본의 힘 앞에 과학은 입을 다물었다. 때론, 거짓말을 해야 했다. 공식적으로는 아직도 온산병의 원인은 미궁에 빠져 있다.

최근에, 7년을 끌었던 담배 소송에 대한 판결에서 서울중앙지법 민사13부는 흡연과 폐암 사이의 과학적 인과관계를 밝히기에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병을 일으킬 수 있는 요인은 너무도 많아서 직접적 인과를 밝히기 어렵다는 것이다. 오염된 먹거리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도 과학에만 기대서 밝히기는 역부족이다. 비소를 한 움큼 입에 털어 넣자마자 덤프트럭에 치인 사람의 사인을 밝히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과학의 명쾌한 판결을 기대할 수 없다면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 대등한 권력관계를 가지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다. 그런 상황 아래서만 과학이 다양한 관점의 근거들을 뒷받침 할 수 있다.

주일우(과학평론가ㆍ문지문화원 ‘사이’ 기획실장)

△ 인류 최대의 독살사건

방글라데시 8,000만명‘비소 중독’ 신음

인류 최대의 독살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내게 처음 전해 준 것은 무하마드 자카리야. 방글라데시 최대의 민간단체 브락(BRAC)에서 수질문제를 다루던 그는 과학잡지 <사이언스> 에 방글라데시 국민 3분의 2에 해당하는 8,000만 명이 만성 비소중독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보고를 했다.

산업화 과정에서 더러워진 지표수를 마시기 어려워진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깨끗한 물을 확보하기 위해서 우물을 파기 시작했는데 그 우물에 상당한 양의 비소가 포함되어 있었다. 우물 1리터당 4㎎의 비소가 녹아있었는데 안전한 비소의 양은 최대 물 1리터당 0.01㎎이다.

비소 중독은 천천히 진행되지만 심해지면 피부에 검은 반점이 생기고 흑색종으로 발전하는 무서운 증상이 나타난다. 신장, 위장, 신경계, 심혈관계, 호흡기 질환을 유발하기도 한다.

문제는 우물물에 비소가 어떻게 흘러 들어 가는지 제대로 규명이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식수원으로 사용되는 지하수의 수위 변화 때문에 특정한 곳에서 녹은 비소가 흘러 다니는 것이 아닐까 추측될 따름이다. 따라서 자연적인 원인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지하수 수위의 변화가 사람이 환경에 힘을 가해서 이루어진 것일 수도 있어 딱 잡아 이야기하기는 곤란하다.

복잡한 사람의 문제가 개입되지 않은 경우에 과학이 접근하는 방법은 훨씬 단순하고 명료하다. 우선 과학자들은 사람들이 비소를 섭취하는 경로를 밝혀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섭취 경로가 밝혀지면 비소에 노출되지 않도록 조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그리고 비소를 걸러낼 수 있는 정수 장치도 만들고 있다. 현재 특수 점토로 만든 관을 비소가 포함된 물에 떨어뜨려 1시간 안에 먹을 만한 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비소가 함유된 물에 철을 넣어 비소와 철의 화합물이 침전되게 만드는 방법도 개발되었다. 비용의 문제만 해결된다면 과학은 지상 최대의 독살 사건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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