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개시 한 달을 지나고 있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역할을 두고 요즘 극단적으로 상반된 요구가 충돌하고 있다.
한편에선 국제 문제에 관한 ‘도덕적 지도자’로서 왜 주요 현안에 대해 적극적인 입장을 표명하지 않느냐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반면 다른 쪽에선 “유엔 사무총장이 무슨 교황이냐”며 ‘주제 넘게’ 아무데나 나서지 말라는 식이다.
●도덕적 지도자가 되어야 하나
반 총장은 이런 목소리에 대해 아직은 뚜렷한 반응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하지만 결국 반 총장이 어떤 스타일의 유엔 사무총장이 될 것인지에 관한 이 문제는 매우 복잡한 선택의 방정식을 내포하고 있다.
존 볼튼 전 유엔 미국대사(내정자)는 반 총장의 선출에 도움을 줬다는 생각 때문인지 몰라도 마치 상왕(上王)이라도 된 듯한 기이한 언행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런 식이다.
“유엔헌장에 따르면 유엔 사무총장은 ‘도덕적 지도자’가 아니라 이 기구의 ‘최고행정관’일 뿐이다. …논란을 방지하기 위해 사무총장은 유엔 기구에서 다수의 회원국들에 의해 채택된 의견만을 말해야 한다.”(워싱턴포스트 1월14일자 기고)
유엔 사무총장의 역할을 이토록 천박한 형식논리로 재단하는 주장을 대하면, 반 총장에게 보란 듯이 강하고 분명한 목소리를 내라고 하고 싶다.
하지만 막상 반대편 얘길 들으면 생각이 달라진다.
반 총장이 최근 아프리카 순방을 위해 유엔본부를 비웠을 때, 젊고 거침이 없는 한 캐나다 기자가 단도직입적으로 “한국인들은 반 총장이 요즘 같은 때 유엔 사무총장으로 적합한 인물이라고 보는가?”고 물었다.
“그걸 지금 누가 단정할 수 있겠느냐”며 짐짓 어깨를 으쓱해보이자, 그는 말을 이었다.
“반 총장은 이란과 이라크,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정치적 입장을 밝히지 않는다. 이런 문제는 아프리카 문제보다 국제안보에 훨씬 중요할 수도 있다. 코피 아난 총장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불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반 총장은 왜 그런 식으로 얘기하지 않는가?”
뭔가 얘기를 해줘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답했다.
“사실 어떤 이슈에 대해 소신을 밝히는 건 어렵지 않을 뿐 아니라, 기꺼이 하고싶은 일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반 총장은 자제하고 있다. 한 마디만 해주고 싶다. 그는 절대 ‘환상적인 사람(fantastic person)’이 아니다. 그는 매우 신중하고 실용적이다.”
●‘로우키 전략’에 공감
유엔 사무총장을 마치 집사 취급하려는 몇몇 강대국들의 오만함을 대하면 불끈 화가 솟다가도, 달리 생각하면 반 총장의 ‘로우키(low key.낮은 자세로 차분하게 대응하는 일의 방식)전략’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차분히 생각해 보면, 유엔 사무총장이 시원시원한 ‘설교’로 국제사회의 스타가 돼야 할 필요는 없는지도 모른다. 대신 유엔 무대에서 차분하게 힘과 동조자들을 모아, 국제평화를 위해 합리적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강대국들을 조용히 설득할 수 있다면 더욱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이란이건 팔레스타인이건, 또 한반도의 평화정착이나 통일 문제이건 말이다.
장인철 뉴욕특파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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