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경제부 차관, 산업자원부 장관 등을 지낸 정통 경제관료 출신으로 '경제전문가'를 자처해온 정덕구 열린우리당 의원이 그제 돌연 의원(비례대표)직을 사퇴했다.
시장경제와 사회안전망의 조화를 통해 외환위기 이후의 전환기적 잔재를 털어내겠다는 생각으로 정치권에 입문했지만, 작금의 정치환경이 너무 척박해 소신과 철학을 제대로 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본인은 '고통스럽고 고독한 결정'이라고 말했지만, 소속 정당이 해체국면에 접어든 정치상황이나 그에 대한 주변의 다양한 평가로 볼 때 결단의 배경이 맑게만 와 닿지는 않는다.
그러나 누구보다 의욕적으로 의정활동을 해오면서 후배들이 주도하는 경제정책에 대해 "씨름판에서 샅바를 놓친 씨름꾼처럼 우왕좌왕한다"는 등의 애정어린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던 만큼 정 의원이 남긴 '사임의 변'은 곱씹어볼 가치가 충분하다.
그는 "집권여당이 시장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줄곧 노력했고 일부 정책은 국회바닥에 뒹굴더라도 막으려고 했지만 이 같은 말과 행동을 계속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갖게 됐다"며 기득권 포기 차원에서 의원직을 사퇴했다고 말했다.
우리 경제가 중요한 변곡점을 지나며 위험요소를 키워가고 있는데, 정부와 여당은 갈수록 포퓰리즘적 지배를 강화하면서 국정과 민생을 더욱 피폐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는 또 "대평원에서 달리기를 잘하는 선수로 선발됐는데, 와보니 평원과는 다른 정글이더라"는 말로 자신의 식견이 정치적으로 채색되고 무시된 정치 및 정책 프로세스를 비판했다. 경제전문가를 '머리만 있고 가슴은 없는 비정한 기술자'로 매도한 노무현 대통령의 최근 언급을 겨냥한 듯 싶다.
그는 특히 정치논리가 경제논리를 왜곡하고 정치꾼이 경제당국을 지배하는 대선국면의 난장판을 우려했다. 정치권에선 정 의원의 결단과 주장이 '순교적 진정성'보다 '정치적 계산'에서 나온 것이라는 추측이 적지 않다. 하지만 코드놀음에 빠진 정부와 정치놀음에 빠진 당이 싫어서 떠나는 전직 경제관료의 고언은 새겨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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