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열린 LG패션 닥스 여성복의 ‘07 S/S 시즌 프레젠테이션’ 현장. 강력한 회춘제라도 투입했나 싶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60,70대 할머니 브랜드였던 이 브랜드가 젊음의 활기와 여성적인 매력으로 넘쳤기 때문이다. 문근영에 이어 국민 여동생 자리를 꽤찼다는 탤런트 이영아가 닥스 체크 블라우스에 원피스를 받쳐입고 나타났다.
청바지와 하얀 민소매 티셔츠 차림이라도 어깨에 슬쩍 둘러주기만 하면 패션감각과 교양을 아울러 보여줄 것 같은 앙증맞은 망토나, 크루즈 여행길의 에스프리를 더해줄 1920년대 풍의 하얀색 미니드레스, 가볍고 섬세한 시폰 블라우스 등은 기존 닥스의 원로 교수님 이미지를 훌쩍 뛰어 넘었다. 지난 2년 닥스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흔히 브랜드 리뉴얼(renewalㆍ혁신)은 신규 브랜드를 내놓는 것보다 어렵다고 한다. 한번 소비자의 뇌리에 이미지가 고정되면 좀처럼 그 고정관념을 바꾸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종의 낙인효과다. 피혁브랜드 루이 까또즈가 대표적이다. 1980년에 프랑스에서 탄생한 브랜드이지만 여전히 ‘무늬만 프랑스’인 국산 브랜드라고 생각하는 소비자가 더 많다. 한국 라이선스업체가 지난해 본사를 아예 사들이면서 프랑스 태생임을 집중 홍보하는 것이 주요 마케팅전략으로 떠올랐을 정도다.
LG패션의 닥스 여성복도 불과 2년전에는 좋은 말로 중장년 브랜드이지 실제 구매고객은 60,70대가 전체 매출의 50%를 차지했다. 50대가 35%였다. 이 브랜드가 불과 2년 사이 괄목할만한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올 봄엔 영 라인(Young Line)을 전국매장을 통해 선보이면서 30대까지 목표 연령층을 대폭 낮췄다.
LG패션 여성복 총괄담당 김영순 상무는 “패션은 늘 젊음을 추구한다. 그것은 나이가 아니라 취향의 문제”라며 “해외 럭셔리 브랜드가 20대부터 70대까지 모든 나이대의 여성에게 소구하듯 닥스 여성복도 매 시즌 계속 변화하면서 논-에이지(Non-age) 브랜드로의 입지를 구축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전 연령층을 매혹하는 것은 어쩌면 모든 패션브랜드의 로망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간단하지 않다. 닥스 여성복만 해도 2005년 가을시즌 브랜드 리뉴얼을 단행하면서 가장 큰 고민이 ‘기존 고객의 이탈’이었다.
당시 닥스 여성복은 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디자인실 유영주 실장은 “고객 충성도가 높은 브랜드이지만 2005년 봄을 정점으로 매출이 서서히 둔화하는 추세였다”면서 “변화의 필요성은 절감했지만 60,70대 고객이 절반을 차지하는 상태에서 디자인이나 사이즈에 손대기가 쉽지않았다. 오죽하면 내부적으로 매출하락 이유를 ‘고객들이 자꾸 돌아가시니까…’라고 반 농담 반 진담으로 했을 정도”라고 전한다.
노후화된 브랜드를 기존 고객의 이탈을 최소화하면서 개선하는 방법은 단 하나였다. 눈에 띄게, 그러나 조심스럽게. 닥스 여성복은 우선 체크를 바꿨다. 소비자 조사결과 가장 많이 팔리지만 ‘항상 똑같다’는 불만도 가장 많은 부분이 체크였다. 기존의 단조로운 체크에서 체크 간격이나 크기를 달리하고 색상도 조금씩 바꿔주며 변화를 노렸다. 영라인의 모태가 된 리미티드 에디션도 이때 처음 내놨다. 트렌드를 접목한 제품으로 변화를 알리기위한 일종의 미끼상품이었다.
두번째 시즌 부터는 실루엣과 사이즈 체계를 재정비 했다. 닥스 여성복의 주력 사이즈가 77이었지만 영캐주얼 브랜드와 비교하면 같은 77이라도 한 사이즈가 큰 상태였다. 실루엣은 재킷은 무조건 박스 형태로 언뜻 여성복인지 남성복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고, 바지도 밑위 길이가 너무 길어 바지 선을 날렵하게 빼기 어려웠다. 사이즈를 칫수는 그대로 두고 실제로는 0.5~1 인치까지 전 부문에 걸쳐 줄여나갔다. 77사이즈까지의 소비자들은 만족했다. 그러나 그 이상에서는 착용감이 불편해졌다는 말이 나왔다. 일부 고객의 이탈도 있었다. 영업현장에서는 차라리 패턴을 달리 하라는 불만도 터졌다. 결국 88사이즈를 기점으로 바지 패턴을 두가지로 나눴다. 착용감 개선을 위해 스트레치 소재를 대거 사용하는 등 보완이 계속됐다.
이번 시즌, 닥스 여성복은 그동안 몇몇 대표매장에서만 전체 물량의 10%선에서 공급하던 리미티드 에디션 상품을 영 라인으로 재정비하고 56개 백화점 매장과 7개 대표 가두점에 전체 물량의 30%까지 확대해 선보인다. 2년에 걸친 사이즈 및 실루엣 재정비가 완성단계에 이르렀다는 판단. 새로워진 닥스의 이미지를 통해 30대 중후반 젊은 고객까지 충분히 끌어들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비친다.
김영순 상무는 “지난 2년간의 변신은 일단 성공적이었다고 본다”며 “다만 고객의 나이 보다 취향을 만족시켜야 하는 시대이고, 아무리 전통있는 브랜드라도 최신 유행의 중심에 서있는 것이 중요한 만큼 영라인을 세컨드 브랜드로 분리해 유행선도적 브랜드로 키우는 것도 구상중”이라고 밝혔다. 닥스 영라인이 한국판‘버버리 프로섬’이 될 날이 올까.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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