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만큼 살았다면서 부르는 노래 있지 왜. ‘ 미련도 후회도 없다’던가 하는 노랫말. 그거 순 엉터리야.”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김안제(金安濟ㆍ71) 서울대 환경대학원 명예교수. 그는 “미련도 후회가 없으려면 더 바라는 게 없어야 하는데, 나는 저승 가서도 하고싶은 게 많다”고 했다. 일상을 기록하는 일도 그 가운데 하나다.
그가 ‘출생에서 고희까지 70년 생애’를 기록한 <김안제 인생백서> 라는 책을 펴냈다. 태어나 살면서 남긴 모든 삶의 흔적을, 말 그대로 가감 없이, 시시콜콜히, 기록한 2,700쪽 분량의 책이다. 족보와 가보, 키ㆍ몸무게 변천사, 여행 회수 및 거리, 유년기 숨바꼭질서부터 최근의 골프에 이르는 취미의 이력, 이사 자녀 출가 등 개인사ㆍ가족사, 라디오 방송출연 회수와 연설 회수, 신문 기고 회수 등 공적 활동의 면면 등등…. 김안제>
-31세이던 1966년 3월25일 피우기 시작한 담배는 35년간(35세까지) 수학기에 912갑, 35년간의 활동기에 2만186갑을 피워 도합 21,098갑에 이르렀고, 27세이던 1962년 4월7일서부터 마시기 시작한 술은 소주 2홉들이 기준으로 수학기 중 1,042병, 활동기중 2만152병을 마셔 모두 2만1,194병에 달했다. 6세이던 1941년 2월1일서부터 부른 노래는….( <취미생활> 부분) 취미생활>
“매일 일기나 메모를 쓰기 시작한 게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야. ‘통신표’, 이름표까지 하나도 안 버리고 모았고.” 그 자료들을 전주의 <한국종이박물관> 이 개관(1997년)하던 즈음 기증했는데, 3톤 트럭 한 대 분량이었다고 한다. 한국종이박물관>
그는 하루하루의 기록을 월말마다 노트에 옮겨 정리하고, 매년 집계했다. 그렇게 취합한 일생의 기록을 만 70세 되던 지난 해 7월 최종 정리해 책을 엮은 것이다.
“우선 내 개인의 일생을 기록한다는 보람이 있지. 또 우리 민족은 기록문화가 약하잖아. 얼마간 자극이 됐으면 좋겠고, 훗날 사가들이 공적인 사료로 확인하기 힘든 민간의 삶, 세속의 삶을 살피는 자료로 썼으면 좋겠어.”
학자로서 그는 32건에 원고지 9,145매 분량의 학술저작을 했고, 민중서관 사원서부터 교직, 대통령직속 지방이양추진위원회 위원장까지 총 642건의 발령을 받았다. “매일 기록을 하다 보면 삶을 절제하게 돼. 거짓말을 쓰면 기록의 역사 전체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고, 그러자니 나쁜 짓을 못 하게 돼. 그래도 반성할 일이 많았지만 말이야.”
회갑이던 96년 말에도 그는 <한 한국인의 삶과 발자취> (836쪽)라는 제목으로 책을 엮었다. 이번 책은 그 책의 개정ㆍ증보판이다. “지난번 책에서 줄이거나 누락시킨 것들도 죄다 실었어. 필요하고 안 하고는 내가 판단할 일이 아니라고 본 거야.” 한>
저승에서 갖고싶은 취미 항목 맨 끝에다 그는 이렇게 써두고 있다. ‘지속적인 천로역정(天路歷程) 기록.’ 그의 제자 가운데 한 명에게 김 명예교수를 한 마디로 소개해달라고 하자 그는, 익명을 조건으로 이렇게 말했다. “참 희한한 분이시죠.”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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