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을 한국 어린들을 위해 아낌없이 써 주세요.”
아동 권리 비정부기구(NGO)인 세이브 더 칠드런(Save the Children)의 김인숙(65ㆍ여) 부회장은 25일 편 지 한 통을 받고 깜짝 놀랐다. “닉 라산드로씨의 사망 소식을 전하게 돼 유감스럽습니다. 고인은 남긴 재산(3만6,300달러ㆍ약3,400만원)을 한국 어린이들을 위해 써 달라는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발신지가 미국으로 표시된 편지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김 부회장은 오래된 기억을 더듬었다. 라산드로씨는 1986년부터 한국 어린이들을 후원해 온 미국인이었다. 후원자의 정확한 신원을 캐묻지 않는다는 방침에 따라 그가 어떤 인물인지는 잘 모른다고 했다.
다만 직업은 기술공이고 뉴욕에서 평생 홀로 살아왔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김 부회장은 “자그마한 체구에 아이들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온화한 인상의 중년 남성이었다”며 “정기적인 후원 외에도 한국을 몸소 다섯 차례나 방문하며 한국에 대한 진한 애정을 과시했다”고 회상했다.
그 중에서도 충북 청주에 사는 주부 최재연(30)씨에게 라산드로씨는 각별하다. 20년 전 충북 괴산의 가난한 농가의 맏딸이었던 최씨는 농사일로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여섯 동생을 도맡아 키워야 했다. 자칫 학업을 포기할 수도 있었지만 라산드로씨는 수시로 편지와 선물을 보내며 최씨를 격려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최씨의 졸업과 결혼, 출산까지 모두 지켜보며 인생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었다.
최씨는 라산드로씨의 7년 전 마지막 방문이 잊혀지지 않는다. “닉 아저씨가 느닷없이 죽음에 대한 얘기를 꺼내면서 ‘네가 가족을 이루게 돼 너무 기쁘다. 세상을 떠나는 날 남길 것이 있다면 한국 어린이들에게 주고 가고 싶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 말이 유언이 될 줄은…”
김 부회장은 “얼굴도 모르는 아이들을 위해 가진 것을 아낌 없이 주고 떠난 라산드로씨야 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키다리 아저씨’”라고 말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라산드로씨가 남긴 유산을 아동권리센터 설립을 위해 사용할 계획이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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