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올 새해연설에서 대선주자들을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앞으로 대한민국에 필요한 지도자는 경제만 말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동반 성장과 사회 투자와 사회적 자본과 같은 새로운 전략을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추진할 수 있는 지도자이다." 옳은 말이다.
경제가 어렵다고 하여 정치인이고 유권자고 모두 경제만을 외치고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1997년 말의 외환위기가 결정적이었다. 사실 지난해의 경제성장률 5%는 결코 낮은 것이 아닌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제난을 느끼는 것은 빈부격차가 심화되어 일부 상층 사람들만 성장의 과실을 누렸기 때문이다.
● 경제가 나라의 최고 목표인가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경제만 외치고 있는 것이 꼭 경제난 때문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외환위기 전의 한국 경제가 반드시 요즘 몇 년 동안보다 더 나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려운 때도 있었고 나은 때도 있었다.
필자는 80년대 후반의 '3저 호황' 이후 20년 동안 언론이나 야당이 한국 경제의 위기를 말하지 않는 때를 보지 못했다. 한국 경제가 '언제나 위기'인 것은 진정 위기여서라기보다는 물질만능주의가 시간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삶의 모든 가치가 물질 생산에 있고 그 물질 생산을 극대화하기 위해 기업과 국가는 '무한 경쟁'을 해야 한다. 정치인이든 경제인이든 지식인이든 이 물질 생산의 극대화가 세상 모든 가치보다 우선하고 그것에 조금이라도 지장이 생기면 곧 한국의 위기가 온다.
벌써 치열한 경쟁을 시작한 대선주자들도 하나같이 경제 회복과 민생 안정을 최우선 공약으로 내세운다. 먹고 사는 것이 인간 삶의 기본 조건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이를 부인하는 대선주자를 상상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이것이 모든 경쟁자들이 하나같이 전력투구해야 할 최상의 목표라고 하기에는 대한민국의 품격이 아쉽다. 민생 안정은 개인의 삶과 국가 발전의 '기본' 조건이지 '최고'의 목표는 아니다.
개인 차원에서 보자면, 먹고 사는 것이 첫째로 중요하기는 하지만 굶고 있지 않는 한 그것이 인생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 나라 전체 차원에서 보아도, 경제성장이 국가 발전의 기본 조건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국가의 최고 목표가 될 수는 없다.
지금 나라가 어수선한 것은 경제가 어려워서라기보다는 오히려 별 이념 격차도 없는 사람들끼리 서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원수처럼 으르렁거리기 때문이다.
갈등할 사회경제적, 이념적 토대가 빈약한데도 정치 갈등이 많은 것처럼 보이는 것은 갈등을 조정할 정치 기술과 국가적 사명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저마다 자기 이익만 좇고 나라 전체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조그만 당파이익을 둘러싼 싸움이 그치지 않는 것이다.
● 국가의 품격 높일 지도자를
다음에 대통령이 될 사람은 이러한 불필요한 갈등을 조정하고 통합할 지도자였으면 좋겠다. 아직도 경부운하 건설이나 페리 운항 같은 개발주의적 사업을 최우선 공약으로 내세우는 사람들이 대선 선두주자라니, 한국 정치와 사회의 수준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착잡하다.
브라질의 카르도수 전 대통령은 갈등으로 얼룩진 브라질 사회를 통합하고 경제 발전도 이루었으며 외교에서도 브라질을 존경받는 위치로 올려놓았다. 저명한 사회학 교수였던 그는 지성과 정치력을 두루 갖춘 큰 정치인이기도 했다. 그가 아마존 대개발 같은 공약을 내세우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한국의 대통령도 이제 경제, 정치, 문화, 환경, 복지, 외교에 대해 통합적 사고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경제 일변도의 정책은 오히려 사회 갈등을 부추긴다. 카르도수처럼 통합적 지성을 갖춘 지도자가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김영명ㆍ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