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역사학 용어에 '망딸리떼'라는 게 있다. 국내에선 '심성'이나 '정신자세'로 번역해 쓰기도 하지만, 번역만으론 담을 수 없는 뜻이 있어 그냥 '망딸리떼'라고 부르는 학자들이 더 많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갈등의 한 축이 '망딸리떼'의 충돌일 수 있다는 점을 새롭게 생각해보자는 뜻에서 낯선 외래어일망정 그대로 쓰기로 하자.
한 서양학자의 주장에 따르면, 망딸리떼 역사 연구의 특징은 "세상을 구체적으로 전망하는 데 따른 관성적이며 불명료하고 무의식적인 요소들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니 저널리즘 공론장에선 망딸리떼를 거론하기 어렵다. 관성적이며 불명료하고 무의식적인 집단의식이나 정신자세의 문제를 제기했다간 "그런 건 대학 강의실에서나 하라"는 핀잔을 받기 십상이다.
● '신흥귀족' 노 정권 사람들
그렇지만 망딸리떼는 인간의 사고를 제약할 수 있는 틀이기 때문에, 이 틀의 문제를 건드리지 않는 한 상호 소통은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예컨대, 모든 걸 경제의 관점에서만 보고자 하는 '경제주의 망딸리떼'가 있을 수 있다. 박정희 평가를 둘러싼 논쟁은 바로 이런 망딸리떼의 문제이기 때문에 상호 접점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
최근 동아대 김학이 교수는 '경제주의 망딸리떼'가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며 "민주주의는 경제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공감한다. 그렇지만 노무현 정권이 이런 주장을 하는 것엔 문제가 있다.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노 정권 들어 한 가지 흥미로운 현상은 개혁ㆍ진보 진영 내부에서도 경제 문제를 둘러싸고 양분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민생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진보파가 있는가 하면, '과거사 청산'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진보파도 있다. 노 정권은 전자는 실패했지만, 후자는 성공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개혁ㆍ진보 진영 내부에서도 노 정권을 평가하는 시각이 양극으로 갈린다. 이 또한 상호소통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다.
이는 오래전 서양 좌파 진영 내부에서 일어난 논쟁과 유사한 점이 있다. 이 논쟁에서 우리 실정에 들어맞는 한가지 쟁점은 먹고 사는 문제로는 고민하지 않을 정도로 물적 조건이 풍족한 좌파 정치인ㆍ지식인들이 자신이 처해있는 환경의 지배를 받아 서민의 경제적 고통보다는 자신의 관심사에만 몰두하는 정치를 하는 게 과연 옳으냐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과거사 청산파'의 관심사는 '경제주의'에 반대되는 '정신주의'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정신적인 것에 집중돼 있다. 이는 정신적 토대를 확실하게 해놓고 물질을 추구하자는 좋은 뜻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노 정권 사람들이 서민이 겪는 민생고에 동참하거나 고통분담을 하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삶만큼은 경제주의 원칙에 충실하다는 데에 있다. '신흥 귀족'이라는 말을 듣는 이유다.
● 풍족한 좌파, 언행일치해야
노 대통령의 '말'만 해도 그렇다. 왜 과거엔 그런 어법이 박수를 받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한가? 과거 박수를 받았을 땐 서민을 위한 담론을 구사했을 때였다.
대통령이 되어서도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었다. 자신이 장악하고 있는 청와대를 비롯한 공직사회와 '낙하산 인사'의 텃밭인 공기업을 향해 정녕 서민의 고통을 생각하는 자세를 보여달라고 요구했더라면 아무리 거친 어법을 사용했더라도 뜨거운 박수를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그렇게 한 적이 없다. 늘 민생과는 동떨어진 정치적 주제로 정적(政敵)을 향해서만 거친 어법을 구사했을 뿐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망딸리떼의 충돌과 더불어 망딸리떼 내부의 모순으로 인한 불신이 소통 불능 상태를 만들어내고 있다. 정신주의 망딸리떼의 생명은 언행일치와 솔선수범이다. 그럴 때에 비로소 경제주의 망딸리떼와의 균형과 소통도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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