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8일 개최되는 차기 6자 회담에 대한 기대치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높다. 베를린 북미회동과 베이징 남북회동 등 잇따른 사전접촉에서 핵심 당사국들이 모두 만족감을 나타내며 청신호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회담의 성패는 북한 핵 폐기와 관련한 초기이행 단계에 대한 북ㆍ미간에 합의가 어느 정도의 수준에서 이뤄질지 여부에 달려있다.
이와 관련해 미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는 30일 로이터 통신과의 회견에서 “제네바 합의처럼 보이더라도 개의치 않는다”며 “이는 예비적이며 우리가 목표로 하는 비핵화 진행과정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힐 차관보의 발언은 초기 조치의 내용이 제네바 합의와 유사하지만 내용적으로는 더 진전된 수준일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1994년 북미간에 체결한 제네바 합의는 한마디로 북한의 ‘핵 동결’로 요약된다. 구체적으로는 북한측의 △영변 5MW 원자로, 재처리공장, 핵 연료봉 제조공장의 동결과 △50MW와 200MW 원자로의 건설 중단 및 이에 대한 감시, △그 밖의 핵 시설에 대한 신고가 핵심이다. 이에 대한 상응조치로 미국 등 관련 당사국은 북한에 경수로 완공 시까지 중유 등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핵 시설 해체 시점을 경수로 완공 때로 못박아 북한이 핵 개발을 할 시간여유를 줬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동결’이라는 현상유지에만 비중을 둔 합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힐 차관보의 이번 발언은 제네바 합의의 교훈으로 볼 때 우선 핵 폐기 절차와 기간을 단축하는 쪽에 비중을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초기단계에서 기술적으로 최단기간 내 핵 폐기 로드맵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낸다는 의미이다. 정부 고위당국자도 “제네바 합의 당시 핵 동결은 9년의 기간을 잡은 것으로 한미가 추진하는 것은 단기간 내 폐기”라고 말했다.
그러나 협상이 만만치 않다는 시각도 많다. 북한이 지난번 6자 회담 처럼 제네바 합의 수준인 원자로 가동 중단 만을 고집할 경우 마땅한 방법이 없다. 결국 힐 차관보의 언급은 북측의 협상자세가 변수이지만 제네바 합의 수준인‘핵동결’을 마지노선으로 삼아 이 이상의 가시적 성과를 내겠다는 기대와 의지를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정진황 기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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