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대 미국인 할머니가 20년 전 한국인 친구와의 '아름다운 약속'을 지켜 화제다.
주인공은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인근 라미라다의 노인 주거단지에 살고 있는 마거릿 콜러(80) 할머니. 콜러 할머니는 최근 한국의 청소년 대안가정 단체인 '들꽃 피는 마을'에 6만6,000달러를 기부했다. 이 돈은 1987년 숨진 재미동포 유금자(당시 59세)씨가 눈을 감으면서 친구인 그에게 고국의 어린이들을 위해 써달라고 남긴 것이다.
27일 라미라다 자택에서 만난 콜러 할머니는 "이제야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됐다.
하늘에서 금순이가 행복해 할 것이다"라며 오래 전 떠난 친구 생각에 눈시울을 적셨다.
이들의 인연은 1980년 샌프란시스코 동쪽의 아름다운 도시인 베네시아에서 시작됐다. 함경북도 선천 출신인 유씨는 한국전쟁 때 월남해 경희대를 졸업한 여성 엘리트였다.
1950년대 후반 미국에 유학해 인디애나대에서 언론학 석사를, 위스콘신대에서 사회복지학 석사를 받고 사회사업가로 활동했다. 유씨에 대한 기사가 68년 8월 21일자 데일리노스웨스턴이란 신문에 '병원에서 일하는 한인 여성'이란 주제로 소개될 정도로 한인은 물론 유학 온 아시안도 많지 않은 때였다.
내성적인 성격인 유씨였지만 당시 베네시아에서 새로운 주민들을 환영해 주는 프로그램 '웰컴 웨건' 담당자로 일했던 콜러 할머니와는 친자매 같은 교분을 쌓게 됐다. 콜러 할머니는 "남편은 혼자서 미국 생활을 개척한 금순이를 굉장히 존경했고, 금순이도 우리에게 많은 한식 요리법을 가르쳐주며 주말과 공휴일은 아예 가족처럼 지냈다"고 회상했다.
유씨는 그러나 자궁암에 걸려 힘없이 인생의 종착역을 향하고 있었고, 지기가 아무런 바람도 없이 세상을 뜨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콜러 할머니는 유씨에게 유언장 작성을 권했다.
유씨는 몇 명 안 되던 지인들에게 약간의 유산을 나눠주고, 나머지는 한국으로 보내 장학재단을 설립해 청소년들을 도와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콜러 할머니는 유산을 집행할 수탁인으로 지명됐다.
콜러 할머니는 당시 유씨의 지인들을 통해 한국에 장학재단 설립을 문의해 놓았으나 오랜 시간 답을 듣지 못하고 하릴없이 20년이 흘렀다. 콜러 할머니는 올해 초 같은 단지의 주민회 이사로 활동하는 박경준(67)씨를 통해 한국의 '들꽃피는 마을'을 소개받아 이 단체에 유씨의 유언을 실천하기로 마음먹었다.
콜러 할머니는 "늦었지만 그녀가 원하던 대로 유언을 지켜줘 얽혔던 실타래를 푼 느낌"이라면서 "금순이는 매사에 사려가 깊으면서도 유머감각을 잃지 않던 내 일생 최고의 친구였다"고 말했다.
미주한국일보 LA본사=배형직 기자 hjba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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