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링컨의 위대함을 초등학교 시절에 배웠다. 그래서 그런지 아주 오래전부터 링컨은 그 얼굴 모습조차도 멋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최근 링컨의 외모에 대한 이야기가 필자로 하여금 그를 다시 보게 하였다.
툭 튀어나온 광대뼈, 움푹 들어간 눈, 뾰족 나온 턱, 꺼칠하고 볼품없는 얼굴, 어느 하나 멋있어 보이는 부분이 없다. 그런데도 링컨이 멋있게 보인 것은 그가 기른 턱수염 덕분이라는 이야기다.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역사적 공헌만 위대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의 턱수염 때문에 그의 외모조차 멋있게 보이게 된 것이 아닐까?
● 실망스러운 대통령 국정연설
링컨이 턱수염을 기르게 된 것은 정치를 시작한 후 그를 좋아하던 한 소녀가 링컨의 외모가 너무 좋지 않은 것을 안타깝게 여겨 턱수염을 길러 보라는 조언의 편지를 보낸 데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링컨이 그 조언을 좋게 받아들였고 그 후 우리는 지금의 링컨의 얼굴모습을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정치란 무엇인가? 국민은 왜 세금을 내가며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고, 또 장관들의 거드름을 용납하는가? 한마디로 말해서 그런 정치인들을 통해 국민이 안정되고 잘 사는 생활을 영위하기 위함이 아닌가?
좌파와 우파의 생각이 무엇이 잘 사는 것이며 어떻게 잘 살게 하는 것이 좋으냐에 대해서는 다를 수 있으나 근본적으로 양자가 나름대로 국민을 편안하고 잘 살게 해 주겠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링컨이 턱수염을 기른 것이 아닐까? 턱수염을 길러 온화한 모습으로 국민에게 편안한 인상으로 다가가서 국민에게 안정감을 주려는 것이 아닐까?
필자는 TV를 통해 노무현 대통령의 새해 국정연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청취하였다. 물론 필자가 바랬던 것은 대통령이 약속했던 국가에 대한 비전이 얼마나 실현되었는지, 우리에게 어떤 희망을 줄 수 있을지, 아니면 적어도 어떤 노력으로, 국민에게 어떻게 봉사하려는지, 그래서 우리가 과연 편안히 마음 놓고 살 수 있게 될는지에 대한 대통령의 구상을 듣고 싶어서였다.
그가 공약으로 내걸었던 동북아중심국가는 어떻게 되어가며, 국가균형발전을 또 어디까지 진행되었으며, 빈부격차는 어떻게 해소되고 있는지, 그리고 또 올 한해 이런 목표들을 위해 무엇을 할는지.
더더욱 중요한 것은 북핵 문제를 어떻게 풀며, 한미 FTA는 어떻게 조정 타결할지 등등. 아마도 이런 것들 중 하나라도 제대로 된 비전과 해결책을 내보였다면 그 해결책은 링컨의 턱수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자는 그의 연설에서 링컨의 턱수염을 발견하지 못했다. 과거에 대한 변명과, 언론에 대한 비난, 실패한 대통령으로서의 자조, 그리고 시간 부족 탓 이외에는.
미국의 대통령은 해마다 상ㆍ하원 합동회의에서 연두교서를 발표한다. 그 회의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대통령의 연설에 귀를 기울이고, 공감할 경우 여야가 같이 박수를 보내기도 한다. 인기없는 부시 대통령도 이번 연두교서를 통해 인기를 조금 만회하였다는 소식이 들린다.
● 권위 회복이 국가에 봉사하는 길
우리는 왜 신년 국정연설을 국회에서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라고 하지 않는가? 비록 대통령과 다른 생각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국민의 대표들 앞에서 진지하게 국가의 당면과제에 대해 대통령의 구상을 설명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협조를 구해야 할 것이 아닌가? 대통령의 자조 섞인 코멘트대로 '노사모'를 앞에 두고 순발력에 근거한 연설이 어찌 국민의 폐부에 와 닿겠는가?
노 대통령의 확실한 공헌은 우리의 정치에서 권위주의를 청산했다는 점이라고 한다. 물론 중요한 공헌이다. 그러나 권위주의는 없애더라도 권위는 살려야 한다.
링컨을 좋아한다는 노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국가에 봉사하는 길은 대통령의 권위를 회복하는 일이 아닐까? 그것이 링컨의 턱수염이 되어서 다른 문제들조차 덮어둘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이영선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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