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통 하나 덜렁 들고, 동네 주유소에 실내등유를 사러 갔다. 난로에 넣을 기름이었다. 기름통 가득 등유를 채우고 돌아오면, 족히 보름 정도는 따뜻하게 지낼 수 있으리라, 나는 계속 그 생각만 했다.
그 난로 앞에서 책을 읽고, 그 난로에 커피를 끓이고, 그 난로 위에 수건을 말려야지. 나는 욕심껏, 되도록 많은 상상을 하며 주유소까지 걸어갔다.
그러나 기름을 쉽게 받을 수가 없었다. 한 번에 6만 원, 8만 원씩 기름을 넣는 자동차들이 계속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주유원들은 기름통을 든 나를 버려두고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다녔다.
나는 바른 자세로 서서 계속 상상만 했다. 그렇게 몇 분을 더 기다리고 나서야 나는 1만8,000원 어치 기름을 살 수 있었다. 가득 채워진 기름통을 두 손으로 낑낑거리며 든 채, 신호등을 건너고, 자전거를 피하고, 아이들을 피해야 했다.
걸어가면서 나는 장정일의 <석유를 사러> 라는 시를 떠올리려 애썼다. 지폐 한 장으로 쌀을 살 것인가, 기름을 살 것인가, 고민하는 시인이 등장하는, 투명하고 맑은 시였다. 석유를>
고민하지 않고 바로 실내등유를 살 수 있는 나는, 과연 얼마나 투명한가, 반문해보는 겨울. 상상은 예나 지금이나, 언제나 가난한 자들의 몫이다.
소설가 이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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