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리케의 여정 / 소냐 나자리오 지음ㆍ하정임 옮김 / 다른 발행ㆍ304쪽ㆍ1만900원
잠시 돈 벌어 오겠다며 미국으로 떠난 엄마. 그러나 불법 체류자인 엄마는 오도 가도 못하고 온두라스에 남은 아들은 엄마를 그리워하며 11년의 세월을 보냈다. 마침내 엄마를 찾아 험하고 낯선 길을 나선 아들. <엔리케의 여정> 은 바로 그 이야기, 현대판 ‘엄마 찾아 삼만리’다. 엔리케의>
LA타임스 연재기사를 바탕으로 한 이 책은 온두라스 소년 엔리케가 엄마를 찾아 죽음을 무릅쓰고 122일간 5만리를 떠나는 감동적인 이야기다.
엄마가 집을 떠난 것은 엔리케가 다섯 살 때였다. 너무 가난해 자식들을 제대로 먹일 수 없게 되자 일자리를 찾아 나선 것이다. 물론 국경 넘기도, 현지 체류도 모두 불법이고 험한 과정이었다. 미국 생활은 생각보다 어려워서 곧 돌아가겠다는 약속은 지키기 어려웠다.
아버지가 딴 살림을 차리자 엔리케는 할머니와, 또 외삼촌과 함께 살지만 그럴수록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쳤다. 엄마는 돈을 부치고 옷과 신발 선물을 보냈다. 그곳의 또래 아이들이 그렇듯, 엔리케는 마약에 빠지고 본드를 마시며 온두라스의 가족, 친척으로부터도 외면 받는다. 비행 청소년으로 자라면서도 엄마에 대한 그리움만은 접을 수 없다. 그래, 엄마에게 가자. 2000년 3월이었다.
고난의 길이었다. 돈 없는 그가 할 수 있는 방법은 걸으면서 트럭에 무임 승차하거나 죽음을 무릅쓰고 화물열차의 지붕에 오르는 것이다. 그러나 갱과 무장강도가 지붕의 아이들을 강탈하고 기찻길로 내던진다.
부패한 경찰은 아이들의 돈을 뺏고 강제 추방한다. 아이들은 그들을 피해 달리는 기차 지붕 위를 뛰어내리고 올라탄다. 팔다리가 잘리고 목숨을 잃는 일이 예사다. 엔리케는 여덟번의 시도 끝에 그 해 5월 강을 건너 엄마를 만난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신발도 제대로 없는 거지 꼴이었다. 입국을 도운 브로커에게 엄마는 많은 돈을 건넸다.
기쁨도 잠시, 엔리케와 엄마는 갈등을 겪는다. 외롭게 힘들게 일하는 게 자식을 위해서라는 엄마, 엄마가 없어 고아처럼 자랐고 마약에 빠졌다는 엔리케…. 시간이 지나면서 둘은 점차 서로를 이해하지만 온두라스에 있는 엔리케의 여자 친구와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또 누나도 보고싶다. 그런데도 만날 수 없다. 목숨을 걸고 열차 지붕에 오르거나 불어난 강을 헤엄쳐 건너는데 성공하지 않는 한 말이다. 그렇게 미국에 닿아도 합법적 신분을 얻기 어렵고 사회적 차별을 각오해야 한다.
이 이야기는 엔리케 가족만의 특별한 경험이 아니다. 가난에 신음하는 중남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적 현상이다. 중남미와 멕시코를 거쳐 불법적으로 미국 땅으로 들어오는 아이가 연 4만8,000여명이라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저자는 온두라스, 과테말라, 멕시코 그리고 엔리케의 엄마가 살고 있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서 6개월을 보냈다. 엔리케처럼 길을 걷고 화물열차의 지붕에 올랐으며 나쁜 사람을 목격하고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 열정적인 취재 덕에 신문기사는 2003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저자는 불법 이민자의 삶을 안타깝게 바라보면서, 신중한 결정을 거듭 당부한다.
엄마는 잠시 헤어진다고 생각하지만 다시 만나기까지 몇 년 혹은 몇 십년이 걸리거나 영영 못 만날 수도 있다. 만에 하나 만나더라도 아이들의 원망을 각오해야 한다. 남자 아이는 거리를 나돌다 깡패가 되고 여자 아이는 거리를 배회하다 임신해 가정을 꾸리는 일이 많다. 혹독한 대가다.
<엔리케의 여정> 이 예사롭지 않게 읽히는 것은 우리 이야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외세 침탈과 남북 분단으로 헤어진 가족이 적지 않다. 돈 벌어 오겠다며 한국에 들어온 재중동포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엔리케의>
박광희 기자 khpar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