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머리를 짧게 자른 것이 화제가 됐다. 고 육영수 여사 스타일의 올림머리를 고수하던 박 전 대표가 강하고 젊은 여성 정치인으로 위상을 재정립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대선을 앞두고 대선주자들이 사뭇 극적인 스타일의 변화를 보이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7년 대선에서 미국 레이건 대통령 스타일을 차용한 세련된 성장 차림으로 고령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며 당선된 이래 대선주자가 스타일리스트를 두고 옷은 물론 화장과 머리스타일에 이르기까지 전문적인 관리를 받는 것은 하나의 관례가 됐다.
덕분에 관련업계에서는 대선 특수라는 말도 생겼다. 최근 한 유력 야당 대선주자 캠프로부터 영입 제의를 받았다는 모 화장 전문가는 “대선주자들의 스타일링이 전문화하는 추세”라며 “전에는 한명의 스타일리스트가 의상과 머리, 화장을 다 맡았지만 요즘은 분야별로 팀을 짜서 들어간다. 벌써 유력 주자들 캠프마다 이미지 전담 팀이 (스타일리스트들의)이력서들을 받아놓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패션이 정치적 함의를 지닐 때 흔히 패션 폴리틱스(Fashion Politics)라는 말을 쓴다. 역사적으로는 18세기 말 프랑스혁명 당시 상퀼로트(반 퀼로트)운동이 첫번째로 평가된다. 절대봉건왕조 타도를 외쳤던 혁명파들이 왕족과 귀족들의 옷차림이었던 퀼로트(반바지)를 거부하고 긴 바지를 입었던 데서 시작된 용어다. 혁명의 성공은 서양 남성복식사에서 긴 바지를 주력 아이템으로 정착시켰다.
국내에서는 19세기 말 최익현이 갑신정변이후 단발령을 거부하고 ‘상투를 치느니 목을 내놓겠다’고 주장한 사건을 꼽을 수 있다. 상투 유지는 개방과 개혁주의자들에 맞서 수구파를 대변하는 정치적 선언이었다.
그러나 피부에 와닿는 정치적 옷입기의 선두주자는 아마도 유시민 현 보건복지부 장관일 터다. 2004년 첫 국회등원 때 면바지와 캐주얼 재킷 차림으로 국회인사에 나서 국회모독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정치적 옷입기의 진수를 보여줬다’는 옹호론도 많았다.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진보적 정치성향을 드러내기 위한 ‘계산된 복장’이라는 평이다.
패션 폴리틱스가 말 그대로 패션을 통해 정치적 주의나 주장을 표명하는 행위인데 반해 최근 몇 번의 대선이 쏟아낸 이미지 정치의 현실은 패션을 단지 ‘포장’으로 취급하는 혐의가 짙다. 박정희식 머리스타일이나 육영수식 올림머리가 향수 마케팅의 혐의를 풍기는 것, 카메라 앞의 그들이 한결같이 미간의 주름을 감추고 염색을 통해 더 젊은 외모를 보이려는 경향 등은 ‘동안’이나 ‘쌩얼’ 같은 시대의 코드에 맞춰 한 표 얻으려는 안간힘으로 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의 새 머리모양을 놓고 한 매체가 전국 성인남녀 대상 호감도 조사까지 한 호들갑은 이미지 정치의 현실은 보여주되 패션정치의 구현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비록 논쟁적이라 할지라도 유시민식 패션 폴리틱스가 훨씬 진정성을 갖췄다고 말하면 오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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