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25일 신년 기자회견은 이틀 전 신년특별연설과는 여러모로 달랐다. 시간조절에 실패해 생방송 내내 당황해 하던 것과는 달리 이날은 비교적 차분하고 담담하게 차기 대선, 열린우리당 내분사태, 부동산 문제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입장을 설명했다.
표현도 많이 가다듬어졌다. 비판ㆍ반대세력에 대해 시중의 비속어까지 동원해가며 원색 비난하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득보다 실이 많았던 어색한 농담이나 가벼운 표현도 의식적으로 아꼈다.
노 대통령부터 기대에 못 미쳤던 신년연설의 기억이 부담이 됐는지 이날 회견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고 한다. 한 참모는 “노 대통령이 간밤에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며 “기자들의 예상질문에 대한 답변을 준비하느라 한번도 거르지 않았던 공관에서의 참모회의도 오늘은 걸렀다”라고 전했다. 노 대통령은 전날 오후 7시쯤 모두발언 요지 및 예상질문과 답변 자료 등을 참모들로부터 건네 받아 이날 아침 기자회견장에 들어서기 직전까지 답변을 준비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참모들이 신신당부한 대로 표현이나 말투는 자제했지만 공세적 자세는 여전했다. 임기 말 대선관리 등을 다짐하며 조용히 지냈던 이전 대통령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노 대통령은 “대선 때든 아니든 나를 공격한 모든 사람에게 응답할 것”이라며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응답하고 사과할 것은 사과할 것이지만 잘못이 없다면 해명할 것이고 악의적인 공격엔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대선개입 가능성을 제기하는 한나라당을 향해서도 “헌법에 1년 전부터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하는 게 있느냐. 지지가 높은 정당은 그렇게 할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 대통령은 지난 연말이래 기회만 있으면 언론과 대립 각을 세웠지만, 이날만큼은 직접 비난을 삼갔다. 노 대통령은 오히려 “차기대선의 핵심쟁점은 결국 언론이 주도하는 것 아니냐”, “국내 언론은 북한에 대해 근거 없이 보도하는 외국 언론과는 차별 있게 해주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며 협조를 당부하는 듯한 말을 하기도 했다.
이동국기자 eas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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