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이 비슷하다고 해서 재취업에서 똑 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유창한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섬유업계의 해외영업 분야에서 10년 이상 일했지만 한 사람은 재취업에 성공했고 다른 한 사람은 실업자 신세다. 의료기기 관련 사업체 사장 출신으로 동갑내기인 두 사람의 희비도 엇갈렸다. 재취업에 필요한 것은 경력과 능력만이 아니다. 일하고 싶은 의지와 도전 정신, 치밀한 전략을 가진 사람에게 재취업의 문은 활짝 열려 있다.
#1 “섬유업종만 하겠다” - 전문분야에만 목매다 낭패
유명 섬유업체에서 해외영업 부장으로 일하던 김경민(가명ㆍ48)씨는 2005년 7월에 명예퇴직했다. 21년 동안 몸담은 직장이었다. 섬유업계가 중국 등 저가상품에 밀려 사향산업이 되면서 그 역시 정든 직장을 떠나야 했다.
“퇴직 후 의류 수입업체를 차리려고 몇 달간 열심히 준비했어요. 그런데 업종 전망이 없어 보여 결국 포기했죠. 이후 지난해 여름부터 직장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기대도 컸고 의욕도 넘쳤다. 금방 직장을 얻을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유창한 영어실력에 누구에게나 호감을 주는 인상. 게다가 중견 섬유업체에서 해외영업을 했지 않은가.
부푼 희망은 점점 깊은 절망이 됐다. 21년 동안 해 온 섬유업계 쪽만 문을 두드린 것이 문제였다. 그는 지금까지 30여곳에 지원서를 냈는데 모두 섬유업계다. 다른 업종에는 한 통의 이력서도 안 냈다.
김씨는 “해 온 게 도둑질이라고, 내가 섬유업종 말고 뭘 할 수 있겠어요. 아무래도 섬유 쪽이 불황이라 구인업체가 적은 것 같아요. 다른 쪽에 지원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는데 이 나이에 새로 뭘 시작한다는 게 두려워 망설이고 있습니다”라고 한숨 지었다.
#2 “섬유업종만 빼고 다 하겠다” - “새로운 시작” 결단으로 돌파
하성호(가명ㆍ44)씨도 중견 섬유업체에서 10년 간 해외영업을 하다가 지난해 4월 퇴직했다. 해외영업 과장으로 일하던 중 회사 매출이 급격히 주는 바람에 구조조정을 당한 것이다. 백수 생활은 짧았다. 여름에 본격적인 재취업 활동을 시작한 뒤 12월 작은 건설자재업체에 팀장으로 들어갔다.
하씨 역시 처음에는 자신의 전문 분야를 살리기 위해 섬유업계 쪽만 바라봤다. 초기에 이력서를 낸 50곳은 모두 섬유 관련 업체였다. 50곳 중에서 딱 한 군데서 얼굴 한번 보자는 연락이 왔다. 영어는 물론, 스페인어까지 능통한 그가 받은 충격은 엄청났다.
전략을 바꾸기로 했다. 섬유업종만 빼고 건설 등 다른 곳에 지원했다. 섬유 쪽이 경기가 좋지 않아 사람을 뽑을 만한 여력이 별로 없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 물론 40대 중반의 나이에 10년 넘게 익혀 온 업무를 포기하고 다시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결심을 하긴 쉽지 않았다. “섬유 관련 업체를 떠나면 내가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잘할 수 있는지 자신할 수 없었어요. ‘무조건 열심히 하겠다’는 말만 이력서에 쓸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요.”
전략은 주효했다. 연락 오는 업체들이 많아지더니 결국 세 곳에서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골라서 간 곳이 지금의 건설자재업체다. 그는 “과감한 도전정신 덕분에 재취업에 성공한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
#3 “아직도 난 사장님이다” - 화려한 과거 집착하다 쓴잔
박태정(가명ㆍ46)씨는 ‘사장님’ 출신이다. 지난해 9월부터 본격적으로 재취업 활동을 시작했는데 아직도 직장을 못 구했다. 박씨는 스스로를 “오만한 구직자”라 부르며 쓰게 웃는다.
그는 1991년에 의료기기 판매업체를 만들었다. 잘 나가던 회사는 97년 외환위기 때 완전히 몰락했고 기신기신 생명을 이어오다 결국 지난해 초 문을 닫았다. 재기를 모색하던 그는 “돈 문제로 부부싸움하기 지겨워서”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다.
직장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지금까지 12번 면접을 봤지만 모두 퇴짜였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며 추진력도 강한 능력 있는 구직자다. 그러나 ‘사장님’ 시절을 잊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면서 면접장을 들어가지만 어느새 뻣뻣한 자세로 면접관들을 가르치려고 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웬만한 의사는 내 이름 다 안다”는 자랑으로 시작하는 일장 연설에 면접관들의 얼굴은 금세 차갑게 굳어진다.
그는 취업 기술을 배우기 위해 컨설턴트를 찾았다. 하지만 컨설턴트가 이력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수정을 요구해도 요지부동이다. “직접 보고 말로 설명하면 된다”는 것이다. 박씨의 직업 상담을 맡은 컨설턴트는 “마음만 고쳐 먹으면 금방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데 사장 시절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해 번번이 고배를 마시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4 “난 이제 사장님이 아니다” - “왕년에…” 잊으니 문열려
유연호(가명ㆍ46)씨는 지난해 10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있는 노사공동재취업지원센터에 등록한 지 1개월 만에 직장을 얻었다. 센터에 온 사람들의 평균 구직 기간이 3개월이 넘는 것을 감안하면 무척 빠른 것이다. 초고속 구직 뒤에는 그의 카멜레온 같은 변신과 적극성이 있었다.
유씨는 96년부터 의료기기 수입업체를 운영해 오다 지난해 초 매출 부진으로 폐업했다. 유난히 자존심이 강한 그는 자신의 실패를 쉽게 인정하지 않았다. 사업 재기를 꿈꾸다 취업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은 “돈 때문에 겪는 집안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취업 전선에 나온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오랜 세월 몸에 밴 ‘오너 마인드’를 과감히 떨쳐냈다. 콧대 높던 자존심을 꺾고 일자리 눈높이를 낮췄다. “우선 현실을 인정해야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내가 왕년에’라는 생각은 재취업의 최대 적이라는 생각을 했죠.” 그는 겸손하고 성실한 ‘모범생 구직자’로 거듭났다. 이력서 쓰기와 면접 요령을 가르쳐 주는 취업 컨설턴트의 말도 순순히 잘 따랐다.
그는 지난해 11월 의료기기를 개발하는 연구소의 부서장으로 갔다. ‘사장님’ 시절에 비하면 지금 연봉은 “껌 값 수준”이다. 그러나 그는 만족한다. 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자신이 여전히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유씨는 “나중에 다시 사업을 하게 되면 지금의 쓴 경험들이 좋은 밑거름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며 활짝 웃었다.
김일환 기자 kevin@hk.co.kr
■ 실업자 등 11만명에 직업능력 개발훈련
노동부는 올해 전직 실업자 등 취약계층 11만명에게 직업능력개발훈련을 실시한다고 24일 밝혔다. 관련 예산은 지난해보다 466억원이 늘어난 3,803억원을 투입한다.
훈련 종류별로는 ▦전직(轉職) 실업자훈련 6만2,000명 ▦대졸 미취업자를 포함한 신규 실업자훈련 1만7,000명 ▦비진학 청소년 등을 위한 실업자훈련 1만9,000명 등이다. 훈련비는 전액 무료이며 참가자에게는 월 교통비 5만원과 식비 6만원이 지급된다. 선반 기계조립 용접 등 우선 선정 직종의 훈련에 참여하는 경우엔 20만원의 수당을 추가로 지원한다.
훈련 참가를 원하는 사람은 각 지역에 있는 노동부 고용지원센터에 구직 등록을 하고 훈련상담을 받은 뒤 본인에게 적합한 훈련과정을 선택하면 된다. 다른 사항은 노동부 홈페이지(www.molab.go.kr)나 직업훈련정보망(www.hrd.go.kr)을 참조하면 된다.
이채필 노동부 직업능력개발심의관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는 실업자들의 직업능력을 개발하고 취업을 지원하기 위해 각종 훈련을 무료로 실시하는 등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며 “실업자가 자신의 취업 능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부 지원 훈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일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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