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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10년 위기를 이겨낸 사람들] <6> 와토스코리아 송공석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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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10년 위기를 이겨낸 사람들] <6> 와토스코리아 송공석 사장

입력
2007.01.24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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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3번씩이나 쫄딱 망했을 때는 정말 죽고 싶었죠. 하지만 이제 와서 보니 그 실패가 많은 것을 가르쳐 준 것 같습니다.”

인천 서구 당하동에 있는 양변기 부품 제조업체인 와토스코리아 ㈜ 송공석(54) 사장. 30년 이상 같은 사업을 해온 그는 스스로를 오뚝이라고 부른다. 빈손으로 출발해 이젠 연 매출 160억원, 순이익 40억원에 이르는 탄탄한 기업을 일구기까지 그는 쓰러지면 기필코 다시 일어섰다.

쓰디쓴 경험 중에서도 1997년 IMF외환위기는 그에게서 모든 걸 앗아갈 뻔했다. 거래처가 줄줄이 부도나면서 돈을 받지 못했고, 제품은 팔리지 않아 공장에 재고만 쌓여갔다. 결국 그의 회사도 부도가 났다.

“직원들 봉급은 1년 이상 주지 못하고, 가족들과는 생이별을 해야 했습니다. 공장과 집은 이미 남에 손에 넘어갔습니다. ”

송 사장은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하지만 상황은 최악이었다. 직원들은 하나 둘 떠나갔고 회사에는 매일같이 빚쟁이들이 찾아와 “돈을 주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송 사장은 위기를 정면돌파했다. 우선 채권자들에게 “지금은 돈이 없다. 생떼를 쓴다고 해결되냐. 일을 해야 빚을 갚을 것 아니냐”며 설득했다.

고생한 보람이 있었는지 1년이 지나자 제품이 조금씩 팔려나가고 회사는 그후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그가 이처럼 재기할 수 있었던 것은 어려웠던 가정형편에서 강인하게 성장해온 경험이 있었던 덕분이다. 1952년 전남 고흥군 대서면 상남리 남양마을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송 사장은 초등학교를 마치고 16세때 맨손으로 상경했다. 배달원, 고물장사, 식당 접시 닦기 등 온갖 궂은 일을 하다 73년 와토스코리아 전신인 남영공업사를 차렸다.

송 사장의 첫 시련은 1980년대 중반에 왔다. 회사가 부도나 공장가동이 완전 중단된 것이다. 그후 4년만에 재기했지만 또 다시 회사 문을 닫게 되는 아픔을 다시 겪기도 했다.

온갖 고난을 극복하고 성공한 송 사장은 봉사와 나눔의 삶에 남다른 열정을 보이고 있다.

“어렸을 때 워낙 가진 것이 없어 자라 훗날 내가 잘 되면 소외되고 힘든 사람들을 돕자고 다짐했습니다. ”

그는 99년부터 1만원짜리 부속품 하나를 팔 때마다 50원씩 적립하고, 매년 회사 이익금의 1%를 떼 내 사회복지시설에 내놓고 있다. 2000년에는 2,500만원을 들여 심장병 환자 6명의 수술비를 대 주었으며,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매년 수천만원을 어려운 이웃들에게 기탁하고 있다.

노인과 청소년들을 위한 헌신적 사랑도 대단하다. 2004년 12월 2억5,000만원을 들여 고향인 전남 고흥에 노인복지관을 지어 주었으며, 매달 130만원의 운영비용도 꼬박꼬박 보내주고 있다. 고입, 대입 검정고시를 거쳐 2005년 늦깎이 대학생(고려대 경영학과)이 된 송 사장은 “앞으로 사회복지법인을 설립, 노인이나 소년소녀 가장 등 소외계층에게 뜻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송원영 기자 wy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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